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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y 08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아름다운 가정
본문 :
골3:18-21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은 그 지으신 것들을 보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6일에 가정을 지으시고 모든 것이 완성되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흐뭇하여 하셨습니다. 가정이 서 있지 아니하면 단순히 ‘좋았더라’가 가정이 세워지고 그 가운데에 제대로 서 있으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세상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지으셨고 보살피시고 지원하시며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가정의 든든한 지원자이십니다. 이렇게 가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은 어떤 공동체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아름다운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반드시 아름다운 가정이어야 한다는 사명적 선포입니다.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가 바로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가정,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가정,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가정, 그 가정은 곧 아름다운 그런 가정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은 가정이 그렇게 설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셨습니다.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가정이 서고 아름답게 됩니다. 그걸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잘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가정이 됩니다. 이제 묻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인가요?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니 심히 좋았더라는 그러한 아름다운 가정인가요? 우리들의 가정은 그런 가정이어야 합니다. 그런 멋진 가정으로 자리하여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정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가정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가정인지를 성경에서 배우도록 합니다. 아름다운 가정은 곧,
1. 아름다운 부부가 있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아름다운 가정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가정이라는 그 울타리의 그 자리에 잘 세워져 있었을 때에 선포하셨습니다. 그 모습에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8,19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좋은 가정, 아름다운 가정은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제 자리에 서 있어서 제 역할을 잘 하는 가정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위치에서 가정을 세우고 아내는 아내의 위치에서 가정을 세워가는 가정입니다. 남편다운 남편, 아내다운 아내가 있으면 됩니다. 그걸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계명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이 복종과 사랑의 계명이 제대로 서 잇는 그런 가정이 잘 된 가정,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정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왜 복종해야 되는데, 내가 왜 일방적인 사랑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못합니다. 그래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가정이 못되는 것입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자연적인 원리입니다.
그러나 남녀가 부부가 되고 한 가정을 이뤘다면 먼저 이 복종과 사랑, 이것이 어느 것이 먼저다 그게 없습니다. 같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복종하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다 어렵습니다. 이건요, 사랑하기에 복종이 가능한 것입니다. 복종하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시에 사랑과 복종, 복종과 사랑이 같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모습이 부부다울 때에 그 가정이 멋지게, 아름답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에는 부부의 진정한 연합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는 부부의 위치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정말 잘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 꼭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 가정이 안정됩니다. 이것이 가정의 기초요 기본입니다. 부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어쩌다 내 남편이 먼저 떠났다. 어쩌다 내 아내가 먼저 갔다 그래도 정신은 서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부부의 연합의 정도에 따라서 아름다운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으로 나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에 남편과 아내를 두셨습니다. 우선은 남편과 아내가 한 가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물로 자리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럴 때에 그 가정은 살아납니다. 남편은 남편자리에 있어야 하구요 아내는 아내자리에 제대로 서 있을 때에 그 가정이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면 부부는 무엇보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여러 사정으로 남편이나 아내가 그 자리에 있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남편은 이랬다고, 내 아내는 이랬다고 하는 그런 정신입니다. 부부가 제 자리에 있다는 것은 몸이 같이 있어야 하구요, 마찬가지로 정신도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하나됨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정은 부부가 하나로 연합한 가정입니다. 뗄 수 없는 하나, 연합된 하나, 둘이 한 몸을 이룬 하나, 이것이 바로 되는 집안의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은 부부가 예수 안에서 아름답게 연합하는 가정입니다. 창세기에서 가르치고 마태복음에서 예수님도 가르치셨던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하나가 될지로다는 것처럼 두 사람이 연합하여 서로 하나가 될 때에 진정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부부는 언제나 같이 가야 합니다. 남편이 가면 아내가 가고 아내가 가면 남편이 가고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부부가 함께 잘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정말 부부가 하나로 굳게 뭉쳐져서 진정한 연합이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신앙으로 굳게 뭉친 가정이 되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사랑받고 인정 받는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가 제 위치에 서 있고 서로 마음을 뭉치고 뜻을 뭉치고 신앙으로 뭉쳐서 빈틈이 없이 서로 돕고 노력하여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잘 교육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아름다운 것은 훨씬 더 아름답고 선하고 그런 것입니다.
2. 아름다운 부모가 있는 가정입니다.
21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름다운 가정은 자녀들의 부모가 제 위치에 있는 가정입니다. 여러분, 좋은 부부가 좋은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잘 키우고 가르치고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자식들이 함께 행복해야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구분은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부부가 제 위치에 서야 하구요, 다음은 부모가 제 위치에 서 바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자녀들도 제 위치에 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합하여 질 때에 그 가정의 터가 잘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경 사무엘상에 보면 사무엘의 가정의 부모는 제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 한나가 기도의 자리에 서 있었고 그의 아버지도 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든든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신앙의 자리, 가정 세우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즉 남편과 아내가 제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노력이 가정을 아름답게 일궈가는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가정에는 이런 흔적이 없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세워가지를 못하였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그렇게 가정을 세우려고 고생하고 애를 쓰고 희생하고 그런 흔적이 없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부모가 죽고 자녀를 세워야 그 가정이 아름답게 서는데 그런 노력이 없어요. 그런 시도를 했다는 기사도 없고 부부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려고 노력했다는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부부가 따로 제각기 자기들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 죽은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주의 은혜로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데는 주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가능함을 알고 하는 고백입니다. 주의 은혜가 복입니다. 주님의 은혜만이 우리 가정을 세우고 살리고 되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난도 해결되고 범죄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길이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요 가정을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부가 제대로 서 있는 아름다운 가정을 잘 세울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엡6: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는 가정을 세워가야 하고 자녀를 잘 교육하여야 합니다. 특히 가정을 위하여 자녀를 위해 희생하여야 합니다. 본문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부모는 특히 자기의 자녀들을 화나게 하는 일들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부부가 자식을 낳아 놓고 자기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쉽게 헤어지고 나눠지면 누가 화가 나나요? 누가 상처를 받나요? 자녀들이 받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건 경고입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면 안됩니다. 자녀를 보면서 참고 지내야 하고 가정을 잘 세워야 하는게 부모의 멍에요 책임입니다. 그렇게 하여서 가정을 든든히 세워야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은 자녀들이 부모칭찬에 열을 올립니다. 자기의 가정을 칭찬하기에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반대의 가정에는 자녀가 부모의 흉을 보는데 열을 올립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볼 것 같습니까? 부모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칭찬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부모를 원망하고 가정에 대하여 원망할 것 같습니까? 자녀들에게 긍지를 갖게 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이 부모에 대하여 가정에 대하여 긍지를 갖게 할 수가 있을까요?
가정은 사람들의 노력으로만 안됩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아니합니다. 가정도 그렇고 자녀들을 키우는 것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 가정을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부모가 되어야 가정을 살립니다. 주님의 도움을 기다리고 주님의 은혜로 가정을 세워 가시는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아름다운 자녀가 있는 가정입니다.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름다운 가정은 자녀들은 순종하는 자녀들입니다. 자녀들도 부모에게 잘 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기본으로 부모가 잘해야 하구요 그리고 자녀들도 순종하고 부모를 잘 순종하여야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입니다. 서로서로 잘해야 좋은 가정이 됩니다. 아무리 부모가 제 위치에 잘 서서 역할을 하고 있어도 자식이 개망나니이면 그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이 되지 못하구요, 반대로 자식이 아무리 가정을 세우려 하여도 부모가 제 자리를 하지 못하면 그 가정도 문제가 많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가정은 좋은 부모와 순종하고 효도하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부모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시대입니다. 가정의 형편상 부모를 집에서 모시기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집에서 모시는 것이 자녀가 할 일입니다. 할 수 잇는데도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 가운데에 한 성도는 요양원으로 모신 어머니를 매주 모시고 와서 교회에서 예배하고 식사하고 길고 다시 모셔 드립니다. 보기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기 싫어하니까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대단한 효도하는 생각입니다. 정말 아름다움 마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가능하면 잘 모시는 방법을 생각하고 자주 찾아가서 보고 그래야 자녀의 도리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는 아름다운 자녀의 덕목은 바로 본문의 말씀처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런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잘 서 있어야 그래야 좋은 가정을 이루고 세워갑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가 효도하는 좋은 자녀입니다. 효도하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입니다. 부모를 슬프게 하거나 마찬가지로 화나게 하지 말고 기쁘게 해 드려야 좋은 자녀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내 부모가 기쁘게 될까 그걸 연구하는 자녀들이 있어야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효자동이 있습니다. 이 효자동에 대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아주 옛날에 한 할아버지가 외출했다 돌아와 그만 정신이 없어서 이불 속에 자고 있는 손자를 모르고 밟고 깔아 죽게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가 손자를 죽인 것을 알까봐 쉬쉬하며 죽은 아들을 데리고 뒤뜰로 가서 함께 울며 죽은 자식을 때리며 “이 불효자식아 네가 어찌 태어나 아버지를 존속살인자가 되게 했느냐 이 불효자식아”라고 했더니 죽은 자식이 매 맞더니 갑자기 깨어나고 살아나 울더랍니다. 이 놀라운 효성의 이야기는 임금님에게 알려지고 임금은 효자 아들 며느리로 불러 치하하고 상을 주며 그 동네 이름을 효자가 낳았다하여 효자동이라 명했다 합니다. 이것이 서울 청와대 옆동네 효자동의 유래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효자자녀이야기입니다.
처제 사례)
효도는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장수의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엡6:1-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러분, 잘 되려고 합니까? 잘 되고 싶습니까? 장수하려고 합니까? 장수하고 오래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러면 잘 되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4. 아름다운 가정교육이 있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잘 양육하여야 합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여야 합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홈페이지를 보니까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알도록 나와 있었습니다. 비슷하기는 우선 양국의 현대 역사가 가지고 있는 유사성이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후유증과 고통을 같이 겪었고 독립하여 전후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양국은 모두 천연자원이 부족하며 유일하게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자원인 ‘인재 양성’에 오랫 동안 힘써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세계인구의 0.3%밖에 안 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전체의 약 30%나 되는 100여명이나 차지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초강대국이지만 그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미국 내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2%인 560만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3대 방송사와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 미국 50대 기업 중 17개가 유대인이 설립하고 경영하는 유대계 기업이며 미국 의학계를 선도하는 아이비리그 교수진의 약 40%도 유대인인데 이는 한마디로 유대인의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유대인식 교육인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신이 명한 계율'이라고 여기는 유대인들의 교육에 대한 애정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고 훈련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정에서의 특별한 신앙훈련을 3가지를 들면 우선은, 인성교육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교훈으로 삶는 인성교육>을 들 수 있는데 그 민족의 쓰라린 과거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며 교훈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통 털어 패전과 패배의 날을 기념일로 지키는 유일한 민족입니다. <하가다>라는 유대의 민족 문학서 또는 역사서가 있는데 그 책에 유대인의 가장 큰 축제일인 유월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우리는 이집트 바로의 노예였다”는 구절로 시작되고 잇습니다. 전 세계 민족 문학에서 이렇게 굴욕이 가득 찬 패배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기록이 또 어디 있을까요? 게다가 자기들의 힘으로 바로에게서 해방을 쟁취했다고 쓰지 않고 해방이 “되었다”라고 수동형으로 써서 자신들의 힘으로 해방을 얻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해방을 시켜주셨음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유월절에 유대인은 식탁에 몇 가지 상징적인 음식을 차리는데 ①쓴나물⇒ 패배의 쓴잔을 되씹기 위하여 먹으며 ②무교병(마초-Matzoh)⇒ 종살이 할 때 먹었던 고난의 떡을 먹고 ③삶은 달걀⇒ 모든 식물은 열을 가하면 연해지고 말랑 말랑해지지만 달걀은 열이 가해지면 오히려 굳고 단단해지는 데 유대인들은 고난 속에서 신념과 결의가 굳어지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 이것을 먹는다고 합니다. ④아라자⇒ 식후에 마시는 음료로 최후 승리와 최후 해방을 상징합니다. 이렇듯 유대인은 과거의 비참한 노예 생활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종살이를 직접 체험하고 실감함으로 미래를 쌓아올린다. 그들은 유월절 밤에만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와 해방을 추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절기와 경축일마다 그들은 반드시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거기서 탈출한 과거에 대해 언급하고 기도하면서 자신들의 현실을 살핀다고 합니다.
다음은 창의적 교육방식입니다.
<강점을 최대한 개발해 주는 창의적 교육방식>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이티', '우주전쟁' 등의 감독, 당대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칭송 받으며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어릴 적부터 유난히 남들과 달랐던 스티븐 스필버그. 유대인인 그의 어머니는 그 독특하고 유별난 아이를 남들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대인식 교육법으로 그를 가르쳤습니다.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만 5세가 되면 의무교육인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유치원에서는 오직 놀이와 게임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워주고 아이들을 잠재능력을 발견하도록 교육을 합니다. 그들은 교육의 속도와 양보다는 ‘무게와 질’에 중점을 두어서 ‘세 살짜리 아이가 책을 읽어 뭐하나’ ‘좀 더 성숙하면 일주일이면 받아들일 것을 왜 굳이 몇 달씩 걸려가며 아이들을 고생시키나’ 등의 조기교육에 대한 회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치원은 물론 가정에서도 취학 전 아이에게 읽기, 쓰기를 가르치지 않아서 조기교육과 유학이 판치는 우리 사회가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선생님께 무얼 배웠는지 물어보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엄마들은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고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묻죠. 세상엔 바보 같은 질문이란 없어요.” 유태인 교육의 핵심은 대화법입니다.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 언뜻 보기에는 아이가 어른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무척 시끄럽고 말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관점으로 보자면 어른 말에 토를 달고 말대꾸하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아이를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서 어른과 똑같이 토론하고 그 결론을 이끌어내는 대화식 교육법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화식 교육법은 부모에게 상당한 인내와 끈기를 요구합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교육이라는 문화에 둘러싸여 자라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탈무드>를 읽힐 때 부모는 반드시 꿀물 한 방울을 책에 떨어뜨리고서 아이에게 입을 맞추게 하여 이것은 <탈무드>에 대한 애착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공부가 사람에게 매우 달콤한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유대인이 중시하는 안식일인데 우리는 휴일은 글자 그대로 푹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대인의 안식일에는 교육의 날입니다. 안식일에 가정에서 나누는 화제는 오로지 교육에 관계된 것들뿐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 주일 동안 자녀의 교육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아들에게 거의 학교 공부에 대한 것만 질문합니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고 묻고 아들은 학교 공부를 복습함과 동시에 아버지 앞에서 시험을 보는 셈이 됩니다. 이런 관습은 유대인으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전통적인 자세와 배우는 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더욱 다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와 함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이들이 이해하는 분위기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신앙 교육을 하는 장이요 학교 교육을 잘 정리하도록 하는 장입니다. 부모가 이 일을 돕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정에 바로 이러한 신앙이 살고 교육이 살아나고 이 일을 우리 아버지가 이끌고 부모가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주 안에서 함께 교육을 세우고 가정을 세워가는 가정입니다. 되는 집안과 안 되는 집안은 바로 자녀에 대한 교육으로 결정이 됩니다. 정말 자녀 교육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맡기신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가 후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우리의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자녀교육에 대하여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교육하고 얼마나 자녀 교육에 관심을 쓰고 살고 잇습니까? 오늘 우리가 우리들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이 잘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자녀의 교육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교육을 정말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런 신앙교육을 잘 시켜야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성장하여서도 세속주의, 인본주의에 물들지 아니하고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본을 잘 보여야 합니다. 제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은 황금연휴로 지난 주는 그저 쉬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 정말 좋은 신앙자세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우리들의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는 일입니다.
맺음: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성경의 본문에서 가르치는 아름다운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1. 부부가 제 위치에 있는 가정입니다.
2. 부모가 제 위치에 있는 가정입니다.
3. 자녀가 제 위치에 있는 가정입니다.
4. 아름다운 가정교육에 있는 가정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복된 가정이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