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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r 27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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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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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6:12-20
아프리카의 중동부 케냐 바로 서쪽 내륙에 있는 우간다라는 작은 나라에 여러분들도 잘 아실 유명한 독재자 이디 아민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이 독재자로 인해 온 국민이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이 나라 우간다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키파 샘판디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었는데, 당시는 아민 대통령을 반대하는 무리면 무조건 죽어버리던 때였습니다. 1973년에 부활절 아침에 암살단이 쳐들어 와서 예배를 준비하고 있던 샘판디를 죽이려고 총을 들이댔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그러시죠 뭐. 하지만 내가 이제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죽이세요”라고 하자 그들은 마지막이니 그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조용히 기도를 했는데 아무 다른 기도가 없고 예수님께서 하시던 기도 그대로 “하나님, 여기 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이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아멘하고 일어서니까 총을 겨누고 암살하려던 사람들이 “기도해 줘서 고맙습니다”하고는 그냥 가더랍니다. 그 키파 샘판디 목사님의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금방 죽는다고 하지만 아무 두려움도 없다. 왜? 부활절 아침이니까. 지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고 부활 신앙으로 충만해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 죽음에 대한 문제가 조금도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리교의 시조 죤 웨슬레에게 어느 사람이 “당신이 내일 밤12시에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기를 “예! 저는 그 남은 시간을 작정한 대로 보내겠습니다. 오늘 밤과 내일 아침은 교회에서 설교하고, 오후에는 툭스버리로 차를 타고 가서 설교할 것이고, 밤에는 회의를 진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 마틴 집을 방문하여 즐길 것입니다. 그런 후 10시엔 잠자리에 들 것이고 12시엔 영광 중에 깰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미래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의 담대함입니다. 이런 부활의 확신이 여러분들에게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한국 기독교부활절 연합예배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오후에 서울광림교회에서 “부활의 생명을 온누리에”란 표어와 ‘내 양을 먹이라’(요 21:17)는 주제로 열리고 우리 일산기독교연합회도 오늘 새벽에 부활절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오늘 ‘부활, 그 후에’라는 제목으로 부활절 설교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는 이 부활의 설교를 여러 차례 들으셨으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믿어집니다. 그러므로 정말 이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예수 부활, 내 부활’이라며 신나는 부활신앙의 성도들이 되시기 기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활에 대한 교리만큼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요11:25-26).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마르다처럼 “주여 그러하외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부활신앙은 모두에게 정말 엄청난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부활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서 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게 되는 진리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부활하신 그 이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대로 부활의 사람으로 바로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는 40일인데 그 40일 기간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제자들은 어쩐지 처지고 실망하고 그런 모습으로 표현되어 잇습니다. 어떤 제자는 시골로 내려갔고 어떤 제자는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옛날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부활, 그 이후에는 어떤 신앙을 가져야 바람직한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1. 부활, 그 후의 제자들
부활, 그 후의 제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분명히 그들은 주님의 무덤을 확인도 하였고 마리아로부터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는데도 왜 이렇게 축 처지고 변했는지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 두 명도 아니고, 수제자라는 베드로도 갈릴리 바다에 가서 고기잡는 어부로 변했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였던 도마도 주님의 부활을 그 감격이 어디로 갔는지 역시 시들어 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유가 없어요. 이렇게 되었어야 할 어떤 이유도 원인도 없는데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지 한번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하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제자들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입니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한 가지, 이제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함께 계셔서 눈으로 직접 확인이 가능하였지만 부활 그 이후 이제는 육신으로가 아니라 영으로 계시니까 내 옆에 있다는 확인이 덜 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했고 부활신앙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순간이었지 지나고 나면 또 관성의 법칙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지요. 그러나 영적으로 언제나 바로 내 옆에 계시는 주님을 우리가 잘 모르는 것 때문입니다. 이게 나약하고 믿음이 없는 우리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활신앙으로 뜨겁게 무장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긍정의 힘> 책을 보면 오래 전에 유럽의 한 남자가 열심히 돈을 모아 미국으로 여행을 하려고 순항함 승선권을 사서 2-3주가 되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를 탔습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먹을 치즈와 비스킷을 한 가방 가득 사서 어깨에 메고 배를 탔습니다. 배에 오르자 모든 사람들은 화려한 식당에 모여서 음식을 먹는데 그는 혼자서 한 쪽 구석에 가서 치즈와 비스킷으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너무나 구수하고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겨우 배표를 살 정도이었기에 돈이 없었고 식사 때만 되면 저만치서 배를 곯고 비스킷과 치즈를 먹으면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항해가 다 끝날 무렵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식사 때마다 저기에서 치즈와 비스킷을 드시는데 이유가 뭡니까? 왜 우리와 함께 연회장에 들어와서 같이 드시지 아니합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승선권도 겨우 샀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을 여유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상대편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선생님, 승선권에는 음식값이 다 포함된 가격입니다. 선생님은 배표를 살 때에 이미 음식값은 지불된 것입니다. 정말 모르셨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엄청난 축복이 부활신앙 안에 다 포함이 되어 잇는데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이 부활의 축복을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없고 나약하게 처져 있는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그래서 나약한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2. 부활, 그 후의 예수님
부활, 그 후의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약해진 제자들을 더 이상 그냥 내 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찾아가셔서 하나하나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처져 있고 나약하게 사는 것이 기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치고 곤하여 실망하면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실망에 처진 제자들을 고치기 위한 주님의 처방은 네 가지입니다.
1)마음을 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만나고 확인하고 그리고 사명을 다졌는데도 현재의 제자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아니 하였습니다. 주님은 무엇보다 우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야 하겠다는 판단을 하셨습니다. 완악한 마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각자의 마음을 활짝 열고 말씀을 받아들여야 자랄 수 있고 키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활짝 열고 믿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데서부터 신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꾸짖었던 것입니다. 완악하면 책망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책망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히3:15). 히브리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완고하다가 40년 간이나 광야에서 유리방황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서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 물가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지니라” 아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눅24:45).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열어야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아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들부들한 부드러운 마음의 상태로 주님이 사용하시는 그런 그릇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제들을 들어 사용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마음을 활짝 열고 부활신앙으로 똘똘 뭉쳐진 하나님이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돌아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지만 믿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믿음을 다 까먹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저희의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는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모인 곳에 주님이 나타나셨는데 도대체가 믿지 아니한 겁니다. 주님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라고 불신하였던 것입니다(눅24:38-41). 이게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기가 차는 것 아닙니까?
주님은 그들이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어야, 믿음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셨고 책망하셨고 그리고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셨고 믿음을 키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일을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그 믿음이 일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일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믿음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일을 하고 믿음이 이기고 믿음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기적을 가져오고 믿음이 또 다른 믿음을 낳고 믿음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가게 됩니다. 믿음의 능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입니다.
3)사랑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세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시며 사랑을 다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랑을 다지고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이 세상에서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이 모든 것이 아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미치 앨 봄의 글 <천국에서 만난 5사람>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와 미래의 내세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자신을 껴안고 자신과의 화해가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요 또 이웃과 화해하는 자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모든 것은 바로 오늘의 우리 현상이 영원한 천국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힘이 우리를 살리고 사랑의 힘이 이 세상을 살립니다. 사랑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사랑의 힘을 길러야 참 제자가 되는 법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 묻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러분은 베드로처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또 주님은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자신있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믿음을 키우고 그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러한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성령을 받으라.
주님은 제자들이 사명자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명자들로 살아갈 철저한 준비로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성령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행1:4-6). 성령을 받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제자가 될 수 없으며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도록 말씀하셨고 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은 다가오시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기다리되 기다리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행1:4-8). 성령의 권능을 받고 능력 받고 그리고 복음의 힘찬 증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부활, 그 후에 주신 사명
1)세상을 향하여 가라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합니다(마28:18-19). 또 마가는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누가복음은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사도행전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복음 전도에 대하여 강조하였습니다(행1:8).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을 통하여 그 부활을 확인한 경험자로서 예루살렘에서부터 회개와 부활에 대한 소식이 온누리에 힘차게 전달되어 가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유언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같이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는 파송 명령을 하셨습니다. 부활 후 첫날 저녁에 10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고 파송하셨습니다(요20:19, 21). 주님은 또 승천하시는 날 500여명의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고 분부하셨습니다(행1:8). 주님은 부활의 경험자인 우리들이 모두 나가서 부활을 전하고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하시며 우리를 파송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들이 되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2)내 양을 먹이라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의 경험자는 주님의 어린 양들을 돌보고 먹이고 처야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혼자서 열심히 살아가는 차원에서 남들을 돌보는 사명자들로 살아야 한다는 점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어린 양을 치는 목자들입니다. 작은 목자요 주님의 목자입니다. 큰 목자는 주님이시고 우리는 작은 목자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목자가 되고 양을 치는 일군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탁이요 명령인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양을 먹이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부활, 그 후의 보장
1)항상 함께 하리라
마28:20절,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제자들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육신으로는 함께하시지 아니하시지만 그러나 언제나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입니다. ‘항상’입니다. ‘함께 있으리라’입니다. 분명한 약속입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임마누엘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임마누엘의 약속은 저와 우리에게도 보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보장은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돕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로 하여금 증인이 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감격인지 모릅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다시 오리라
사도행전 1장 8절 이하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8-11). 주님의 약속은 언제까지입니까?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까지 이 약속은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와 맺은 약속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셨고 그리고 우리는 그 약속을 받고 있으며 또 그 약속대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며 그때까지 우리는 약속을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본 그대로 오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잘 믿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맺음:
*부활, 그 후에 주님이 하신 일은 제자들의
1)마음을 열게 하셨습니다.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2)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저희의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
3)사랑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4)성령을 받으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부활, 그 후에 주신 사명
1)세상을 향하여 가라
2)내 양을 먹이라
*부활, 그 후의 보장
1)항상 함께 하리라. 마28:20절,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다시 오리라.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