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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Feb 18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명절 끝 날에 외치신 주님

본문 :

본문: 요 7:37-44

오늘이 바로 명절 끝날입니다. 우리 민족 최대의 설 명절이 오늘로 끝나 갑니다. 이제 고향으로 가셨던 분들이 돌아오고 해외로 나가셨던 분들도 귀국하는 시간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움의 명절이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반대로 신나고 좋은 추억들로만 가득 채워 오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에게 이 명절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절 증후군’ ‘명절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심하면 병원에 입원도 하고 고생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고들 합니다. 음식하느라 힘들었고 가족들 만나느라고 고생하였고, 오고 가는 도로에서 정차되어 고생하였고 이래저래 우울하기만 한 명절을 보내고 오신 분들도 상당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번 설 명절은 어떠하였는지요?

프랑스 작가인 루소는 말하기를 “인간은 사회 속에서 무수한 쇠사슬에 얽혀져 있다. 10대는 케이크라는 사슬에 매이고, 20대는 연인이라는 사슬에 매이고, 30대는 쾌락에 매이고, 40대는 야망에 매이고, 50대는 탐욕에 매이고, 60대는 절망에 매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매이고 끌려 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말하기를 “10대는 입시 공부에 매이고, 20대는 인터넷에, 30대는 직장에, 40대는 명퇴에, 50대는 아내에게, 60대는 소외감에 매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명절은 더욱 일에 매이고 끌려 다니다가 힘들고 소외당하고 그래서 우울하다고 그런다고들 합니다.

어느 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에 우울증환자는 약 3억 명이며 우리 나라에는 우울증 환자가 85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통계로는 우울증환자는 거의 드러내지 않고 우울증이라고 하는 분들의 15%만 병원을 찾든지 전문가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에만도 우울증 환자들은 몇 백만명이 넘는 통계에 이를 것이라는 추축이 가능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 몇 년 되지 않으면 우울증 치료로 인한 병원비의 증가가 엄청날 것이며 이 우울증이 역시 엄청난 사회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우울증은 예수 믿든지 안 믿든지, 나이가 들었든지 안 들었든지 간에 다 걸리고 드는 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저에게도 다 있을 수가 있는 게 바로 이 우울증이라는 질병입니다. 우울증은 질명입니다. 정신의 병입니다. 사람들이 일단 이 우울증에 걸리면 생각이 쳐지고 영적으로 슬럼프가 오고 우울해지고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침체기에 접어들고 그럽니다. 몸도 마음도 슬럼프에 접어 들게 쉽고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힘들고 생산성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어 집니다. 심하면 환청도 오고 환상도 오고 그렇게 되어집니다.

세계보건기구 즉 WHO는 이 우울증 치료를 위하여 “Depression: Let’s talk” 즉 “우울증: 이야기 합시다”로 정하여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하고 대화하고 나누고 그러자고 그러면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슬로건으로 정하여 서로 대화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개가 나 혼자만의 동굴에 숨어 버리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숨지 말고 대중들과 함께 하고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나와서 사람을 대하여 마주 보고 대화하고 나눠야 우울함을 떨쳐 보릴 수가 있습니다. 우울증이란 사전에 예방하고 치료하면 얼마든지 다 극복하고 치료할 수가 있는 일종의 정신적 감기 같은게 바로 이 우울증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계절적으로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됩니다. 가을이 되면 날씨가 서늘해지고 춥듯이 인생의 가을이 되면 등이 시리고 마음도 시리게 되고 등도 굽어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좁혀지고 동굴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정신적인 스트레스요 정도가 넘으면 우울증이요 그러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달파집니다. 그래서 60대 나이가 되면 소외감에 매인다는 이유입니다. 공연히 외롭고 힘들고 소외당한다고 느껴지고 그래서 우울하여지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환자가 우리나라에서만도 수십만, 수백만 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초대장을 날리셨습니다. 생명으로의 초대, 영생으로의 초대장입니다. 그 초대장 내용은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십니다(마11:28-30). 그리고 본문에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신 초대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초대장을 보내고 여러분을 초대하시고 저를 초대하십니다. 초대의 대상은 ‘누구든지’입니다. 그야말로 ‘누구든지’입니다. 신구약 성경전체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소중한 초대장을 보내고 초청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사람들을 초대하시는 분이십니다.

1. 서서 외쳐 이르시되
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사람들은 일단 누구의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감사한 일입니다. 나를 기억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초대하는 사람이 아무나 초대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 소중한 사람을 초청하지 않습니까? 물론 어떤 초대는 이 초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쩠든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일단 감사한 일들입니다. 초청한 자가 나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고 나를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나이가 들었다고, 아니 잊혀져서 아무에게도 초대장을 받지 못한다 그게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초대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초대를 받고 예수님의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신나고 감사한 일입니다.

“명절 끝날” 이 명절은 초막절로 유대인들은 7일 간이나 지켰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 간을 초막, 장막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그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은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시며 도우시고 세심하게 배려하시면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들은 초막, 즉 장막, 우리 말로는 텐트를 치고 그 텐트에서 생활하며 하나님이 40년 광야생활을 얼마나 세심히 인도하셨는지를 생각하며 기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 메추라기, 불기둥, 구름기둥 들을 기억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예수님이 명절 끝날에 서서 백성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오라는 초대입니다. 누구든지 오라는 초대입니다. 이렇게 초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을 초대하셨고 저를 초대하셨습니다. 신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초대하셨다, 나를 부르셨다 감사한 일입니다. 결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시고 나를 이끄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 감사에 감사가 넘치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도 찾아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에덴에서 범죄하고 동산 숲속에 숨어 있었던 아담과 하와를 직접 찾아가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아 아담에 네가 왜 거기 숨어 있느냐?”라고 다정히 아담과 하와를 부르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를 통하셔서 부르신 음성은 이렇습니다. 이사야 1:18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힘주어 강하게 초대하십니다. 지금도 여러분을 부르시고 저를 부르십니다. 그리고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입니다.

그 부르심으로 인하여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빌립보서 3:1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고린도전서 7:17절,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으로 인하여 오늘 여기 이 자리에서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심, 우리를 인도하심, 은혜를 베푸심, 이는 한없는 은혜요 놀라운 은총이요 가이없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압니다.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압니다. 목을 빼고 눈이 뚫어지게 바라다보시는 그 아버지, 그 사랑의 우리 하나님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사랑하는 집 나간 아들이 초청장을 들고 달려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탕자가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듯이, 우리도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뭡니까? 이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 앞에 달려 나가서 나를 초대하신 그분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나를 불러 주신 그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도가 살아 있는 한, 이 예배가 살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절대로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나를 초대하신 그분과 함께 정을 나누고 속을 털고 얼마든지 조곤조곤 말하고 “Let’s talk” 즉 ‘이야기 합시다’ ‘나눕시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나눔, 여기에 영적 시원함과 만족함이 있고 여기에 치유가 있고 여기에 찬양과 감사가 따르는 법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지금도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 그 자체가 대화하자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초대하시는 하나님, 그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외면하고 갈등하면...
40-43절,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예수님의 우렁찬 초청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갈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반응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긍정적인 반응자들입니다. 복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는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라며 갈릴리의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메시야가 될 수가 없다고 강력하게 성경을 들이대며 말합니다. 결국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분쟁하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문제가 왜 발생하고 갈등이 왜 일어납니까? 믿음의 고백에서 제대로 아멘하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왜 아멘하지 못합니까? 왜 문제를 발생시키게 됩니까? 이유가 간단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예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병입니다. 경험이 없고 체험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믿음은 경험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경험, 아멘하여 은혜를 누리는 경험, 이러한 경험들이 있어야 확신하고 예수를 따를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믿음음의 분명한 경험들은 우울증도 이기고 극복합니다. 신앙의 갈등들도 이기고 극복합니다. 넘고 이기고 극복하고 예수님의 초대에 분명하게 아멘으로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상처들이 있어서 갈등하고 쟁론하게 됩니다. 어릴 때의 심한 충격이나 상처들은 자라가면서 삶에서 트라우마로 남게 되고 심하면 우울증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런 트라우마는 비록 성년이 되어서도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되어 문제를 야기 시키기도 합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입니다. 대단히 귀한 일을 행한 전무후무한 그런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다음 20장을 보면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등등한 기세에 눌려서 광야로 도망가고 도망가서 낙심하여 늘어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 말로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를 구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왜요? 이세벨에 대한 상처 때문입니다. 상처가 사람들을 갈등하고 머뭇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타고난 체질 때문일 수 있습니다. 듣는 귀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듣지 못하니 응답하지를 못합니다. 듣지 못하니 초대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게 불행입니다. 듣지 못하니 예수님은 고함치며 초대하시고 명절날을 지내는 사람들은 끝내 그 초대를 받지 못하는 언발란스가 연출됩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러나 반대로 듣지 못하니 누가 믿으리요. 그렇습니다. 듣지 못하니 불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함치며 소리쳐도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게 불행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사야가 경고합니다.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런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러 듣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고도 일부러 듣지 아니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임도 믿지 않았습니다. 메시야임을 결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막8:19-21절입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일부러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분노의 감정이 머뭇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감정의 폭이 강한 사람, 감정의 높낮이가 심한 사람, 그들이 쉽게 우울증을 만들어 갑니다. 때로는 화를 심하게 내고 별 것 아닌데도 심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욱하고 성질을 내면 우리 안의 감정의 연못에 은혜의 물이 쫙 말라 버린다고 합니다. 이 지구상의 많은 물들은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만일에 이 지구상에 물이 없으면 지구는 달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섭씨 100도 이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감정의 연못에 감사와 은혜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초대에 얼마든지 아멘이 되고 나아가서는 순종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화를 내고 분노를 내면 그 은혜의 강물은 다 빠져 버리고 그리고 갈증이 일어나고 먼지투성이로 변화되어서 아멘이 사라지고 그의 삶은 불순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분노들을 삭여내고 녹여내어 치료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의 안에 감정의 연못에 감사와 은혜로 가득가득 채워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초대에 얼마든지 아멘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순종이 되어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그렇게 노래하며 고백하며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고 확신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확실하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 베드로의 고백이 여러분들의 확실한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예수 때문에 고민하면 안됩니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뇌하고 갈등하지 말고 더 이상 신앙의 문제에는 왈가왈부하지 말고 종지부를 찍어버려야 합니다. 아예 ’아멘‘하고 신앙 갈등의 종지부를 찍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복된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설득당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설득 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설득 당하고 예수님께 설득 당하고 설교말씀에 설득 당하고, 복음에 설득 당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설득 당하는 사람들이 복입니다. 진리에 아멘하는 사람들이 복입니다. 사람들은 돈에 설득 당하고, 이성에 설득당하고, 쾌락에 설득 당하고, 놀이 문화에 설득 당하고 컴퓨터에 설득당하고 SNS에 설득 당하고 또 요즘은 가상화폐에 설득당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 믿음에, 복음에 설득 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정말로, 정말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누가 복된 사람입니까?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고 고통스런 광야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분명하게 예수의 편에 서고 나는 분명히 하나님 편에 서리라, 신앙의 편에 서리라고 확실하게 고백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대낮을 뜨거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헉헉거리며 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편에 서리라고 믿고 아멘하고 나아가는 자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고 든든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고 상황이 아니며 현실이요 믿음입니다.


3. 마음을 열고 아멘하면...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면 그 인생의 해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주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보장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 받아 들이면 그에게는 놀라운 새로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입니다. 믿으면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접하면 생수의 강물이 그 배에서 흘러 넘쳐 내릴 것입니다.

강에 강물이 넘치고 흐르면 거기에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선 고기들이 살아납니다. 생명들이 살아납니다. 그 강물줄기 주위에서는 풍요로운 농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주위의 땅들은 기름진 옥토가 될 것입니다.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 아름다움은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은 이러한 모습을 사55:1절에서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8:11절에서는,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할렐루야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9). 그렇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는 물 댄 동산이 될 뿐 아니라 성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그에게 임재하셔서 크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놀랍게 축복하시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초청에 응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렇습니다. 초청에 응하면 그에게 생수의 강물이 터져 흘러나게 될 것입니다. 초청에 응하면 물이 흘러넘치고 그 물은 자신에게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흐르고 넘치고 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입니다. 주님의 초청은 축복의 길로 진입하게 하는 초청장입니다. 지금까지는 힘들고 실패를 거듭하였을지라도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평생을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주님의 초대를 받으면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초청을 받으면 그분의 인도를 받으면 새로운 역사가 펼쳐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그 분이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창세기 49:22절의 말씀처럼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초대를 받고 받아서 그렇게 무성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시고 그분께 맡기고 의지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붙잡아 주십니다. 생각이란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주님이 지켜주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함과 동시에 삶의 현장에서 조크하고 웃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먼저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절대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우울증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긍정적이고 감사하면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2)주께서 문제들을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염려와 근심이 떠날 날 없는 세상입니다. 편안히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힘겨운 짐을 지고 험한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의 짐, 또 어떤 사람은 질병의 짐, 어떤 사람은 슬픔의 짐, 어떤 이는 외로움의 짐으로 인해 한숨 쉬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 죽었던 나사로가 수의로 둘둘 묶인 상태로 살아서 나오자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를 받고 그분을 만나면 묶인 것들이 풀려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를 받고 그분을 만나면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묶여 있는 모든 것들, 건강의 문제도, 경제적인 문제도, 자녀의 문제도 기도하면 풀어줍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여러분, 묶인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을 만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셔서 문제들을 다 해결받고 풀고 가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고 그리고 우리의 묶여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는 사랑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3)하나님은 그들과 교제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교제하십니다.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어 주리라”고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됩니다. 믿고 구하면 열립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리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펼쳐지고 시작될 것입니다.

맺음 :
1917년 막스 레닌은 공산당혁명을 일으키고 1,000년 동안 열렸던 러시아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성전을 공산당 당사와 노동자 숙소, 심지어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70년 만에 소련은 무너지고 붕괴되어 망하고 말았습니다. 소련이 붕괴된 후 그 원인을 각 분야 100명에게 3년 동안 연구하여 발표토록 했습니다. 내란도 외부의 침략도 없었는데 왜 망했을까요? 그 원인을 첫째, 내부문제. 둘째, 하나님을 믿지 않고 버린 것이라 했습니다. 한 소련 공산당 지도자는 “교회 문을 닫으니 모든 문이 닫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멀리하면 하나님도 그 나라를 멀리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이신 여러분, 힘들고 어렵습니까? 우울하고 기분이 별로 입니까? 사람들을 가까이 하기가 싫고 귀찮고 불편하십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가 멀기만 합니까?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하셨습니다(시73:27). 주님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와 사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참 자유가 있고 문제의 해결이 있습니다.

명절 끝날에 주님은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자들이 복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길들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이번 명절 끝날에도 외치셨고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의 초대에 응하면 놀라운 새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신비로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기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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