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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at Jun 16 2018 15: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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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먼저 성령을 따르면 됩니다.
본문 :
본문: 행 13:1-3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의 한 고등학교에서 두 남학생의 총기 난사로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히틀러의 생일을 맞이하여 해리스와 클리볼드라는 이 두 학생은 학생들을 캠퍼스 한 군데에 모아 놓고 한 사람씩 총구를 갖다 대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해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음흉한 미소를 띠우면서 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포 분위기 가운데 한 여학생 차례가 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케이시 버넬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순간에 총을 든 두 학생이 이 버넬 여학생에게 “너도 하나님을 믿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총을 겨누면서 말입니다. 버넬 여학생은 그들이 겨눈 죽음의 총구 앞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리고 너희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네가 믿는 하나님 곁으로 가라.”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케이시 버넬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지켜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하나님을 아멘으로 고백하였던 학생이 순식간에 총탄에 쓰러져 순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케이시 버넬의 순교 앞에 자기들의 비겁함을 한없이 부끄러워했습니다. 얼마 후, 남아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도 케이시 버넬처럼 담대하게 아멘하는 증인으로 서야 하겠다는 신앙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미국 전역의 각 학교에서는 “우리도 케이시 버넬의 길을 따르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죽어도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켐페인이 "국기게양대에서 만나자"(See You at the Pole)는 전국적인 학생 기도 모임으로 발전하여 전개되고 부흥회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부흥회에는 수만 명의 청소년들이 모여서 인산인해를 이루며 회개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기도모임은 이웃 나라 캐나다, 괌,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일본, 터키를 비롯한 전 세계 20 여개 국가에서도 30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캠퍼스 집회로써, 시편 24편 3절에서 6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를 주제로, 각자 학교 국기게양대에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시험대 위에 오를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담대히 아멘합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 고개를 숙입니까? 우리에게는 수없는 시험이 다가 옵니다. 물질로 시험해 옵니다. 때로는 의심으로 다가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적당히 살라고 속삭입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고, 돈이 우상이 됩니다. 자기가 허용하는 한도가 넘으면 광신이요, 자기 방법이 아니면 비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같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불순종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믿고 살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지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믿음을 다잡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하여 보시는 관심은 우리가 결정의 순간에서 아멘하냐 아니면 고개를 돌리냐를 유심히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자리에서도 아멘으로 대답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최대관심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땅의 잃어버린 양들을 향하여 나아가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들이는 일은 너무나 귀하고 귀한 일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하여 지금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전 세계 모든 곳에 영혼구원의 일을 진행하시고 있습니다. 복된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아멘하며 함께 믿음으로 아멘하며 동참하며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의미있는 사역에 적극 아멘하며 참여하고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과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말씀에 아멘하고 모든 일에 아멘하며 희망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잘 될 것을 희망하며 하나님의 부름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또 인간관계도 좋고 자신에 대하여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언제나 아멘할 자세가 다 되어 있는 사람들은 정말 복된 사람이며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긍정적인 사람들과 부정적인 사람들로 혼돈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잘되는 쪽은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도 다 긍정적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관심
1절,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는 이방선교의 첫번째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흩어지면서 세운 첫번째 교회입니다. 그 안디옥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성도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함께 모여 금식하면서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때에 성령님이 그들에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33년 반을 사셨던 우리 주님의 일생을 보면 주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을 고치며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하신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든다면 그들이 여태껏 가지고 살아온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 주고 고쳐주셨다는 점입니다. 병든 자들에게 다가가셔서 병을 고쳐 주셨으며 죄지은 사람들을 만나서 용서해 주시고 사유해 주셔서 그들이 가진 부정적인 생각들을 변하도록 하시면서 사람들을 긍정적인 사람들로 확 바꾸어 주셨습니다. 배고파하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셨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을 심어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언제나 주님은 믿음으로 사람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눅17:5-6절은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의 많은 관심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관련된 말씀은 또 있습니다. 마17:20절에는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제자들에게 믿음의 원리를 가르치시며 믿음을 가꾸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믿음은 그를 가진 자들이 기적을 일으키고 세상에서 능력있게 살도록 만들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즉 사명자들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고에 찌든 우리를 부르셔서 세웠고 그리고 믿음의 사람으로 바꾸어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긍정적 사고로 세상을 살며 사명자들로 살아가기를 기다리고 지켜 보시는 것이 우리 주님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주님은 오늘 여기 모여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대한 프로그램이 다 있습니다. 나는 그냥 존재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세밀한 계획 가운데에 존재하는 나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 안에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환경이 열악해도, 건강이 좋지 않아도, 지금 실패한 것 같아도, 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나는 보통의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는 한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아래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계획을 성취할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 사명을 발견하는 날에 나는 비로소 의미있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바른 인생의 첫걸음입니다.
2.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따로 세워라”
2,3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즉 성령이 안디옥 교회에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따로 세웁니까?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즉 내가 불러서 시킬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사람을 따로 불러서 세워라는 의미입니다. 결과를 보면 ‘일을 맡겨 주시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키기 위하여 사람을 세우시고 그리고 맡기시며 그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시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창조에 관한 일과 구원에 관한 일 말고는 모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의논하셨고 또 우리를 붙잡고 일을 하셨습니다. 창조사역은 절대로 인간이 끼어들 수 없는 하나님의 고유사역이지만 섭리사역은 공동사역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을 불러 일을 시키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나를 부르시고 여러분을 부르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그 음성을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을 구원하신 주님은 그들을 따로 세워서 사용하시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위하여 쑤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나 붙잡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위하여 사람을 불러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일하시려는 뜻입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시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바로 그래서 불려 세워진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 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혹 우리는 아무 일을 하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시기를 바라고 있으면 잘못된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 안의 부정적은 사고들을 확 바꾸어서 긍정적인 사람들로 바꾸고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으로 맡겨주신 나의 사명, 그걸 발견해야 합니다. 믿음은 분명히 기적을 일으키지만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들을 통하여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시려는 그 일, 그를 알고 확인하고 내 가정을 위하여, 내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땀을 흘리면서 노력하고 기도할 때에 그 일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곧 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가능하게 되는 법입니다.
여러분, 왜 인생을 사십니까? 아니 어떻게 성공적인 인생을 사시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불러 따로 세우기를 원하시는 그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따로 세우라는 그것’ 그걸 이루고 성취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 살아가는 목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걸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정말 복음으로 사는, 오직 복음을 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살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그 일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제 그제 이틀간 버스를 대절하여 타고 전라도 지역의 성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증도라는 신안군의 인구 2000명도 안 되는 한 섬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섬은 90%가 기독교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라도 신안군의 기독교복음화 율이 68.5%로 전국 최고복음화 율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누구든지 예수 믿지 않으면 이웃과 같이 어울려서 살기가 어려운 그런 섬입니다. 시골의 농사를 지어도 믿는 사람들의 집 것을 먼저 하다가 보니 자연히 뒤로 밀리고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시초가 문준경이라는 한 여성이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에 순종하여 자신을 던져서 시작된 결과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CCC 설립자 김준곤목사님, 동대문성결교회의 이만신 목사님, 상담가로 유명한 정태기 박사님, 한신대 교수 고재식박사님, 등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한국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이 “내가 시키는 그일” 그것을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은 문준경전도사님을 통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잡고 있는 그 일들이 힘이 들어도 바로 우리 주님이 “내가 시키는 그일” 그것을 위하여 “따로 세우심”이라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따로 세울 영역은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에 따로 세울 그 영역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걸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여 제가 무엇을 따로 세울까요?’ 우리 모두 한 번씩 기도로 진지하게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따로 세울 것이 무엇이 있는지 가만히 묻고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자기를 따로 세우는 사람들을 통하여 흘러 왔고 또 앞으로도 흘러 갈 것입니다.
“내가 시키는 그일” 그것을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이루려고 나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까지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는 그런 무엇이 있습니까? ‘정말 이 일은 내가 하여야 해,’ ‘이게 내 사명이야’ 그런 것들이 있습니까? 그걸 발견하셨습니까? 발견하였다면 그는 사명자가 될 자격자입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바울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내가 불러 시키는 그 일’이며 나에게는 ‘내가 살아갈 존재 그 이유’ 그것을 발견하는 복된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을 따르면 됩니다.
4,5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성령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성령님은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령으로부터 이 명을 받은 안디옥 교회는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고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순종하여 선교의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가 성령에 순종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였을 때에 그 교회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개인이나 교회를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결과로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명을 감당한 모범적인 모델의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에 최선을 다하여 아멘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걸 알면서도 제대로 몸을 던져 실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아니하고 칭찬이 없으면 움직이지 아니하고 보상이 없으면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성령의 명령이면 아멘으로 반응합니다. 비록 내 돈이 들고 내 시간이 들고 내 노력이 따라도 말입니다. 선교에 제대로 헌신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가져지는 것이 없어도, 유익이 없어도 그래도 말씀만 있으면 아멘하며 움직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신앙,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이 시키는 일에 순종하였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성령의 교회는 성령에 순종합니다. 성령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순종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기적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기적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성령님의 감동에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아멘하고 믿음으로 따르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게 능력으로 변하여지고 그게 기적으로 바뀌어 내게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시37:5,6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잠16:3,9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여러분, 신앙이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완벽하게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버리면 성령이 하실 영역이 없습니다. 나에게 성령의 역사하실 영역을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그 영역, 성령이 나에게 역사하실 그 영역, 그걸 신앙의 몫으로 남기세요. 내가 생각하기로는 비록 엉성하여도 순종하는 사람, 아멘하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런 신앙을 통하여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고 이방선교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에게 아멘하고 따라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에 성령에게 아멘하고 따라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 성령에게 아멘하고 따라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걸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멘하고 성령에게 아멘하고 따라야 할 그 영역, 그걸 잘 해야 합니다. ‘주여 제가 어디서 성령에게 아멘하고 따라야 할까요?’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자기를 따로 세우고 아멘하며 따르는 사람들을 통하여 흘러 왔고 또 앞으로도 흘러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따르면 됩니다.
4. 안디옥 교회를 사용하신 하나님
3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하나님은 성령님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며 따른 안디옥 교회를 정말 훌륭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기독교 복음 선교의 진진기지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소아시아 전도가 가능해졌고 그 복음이 온 유럽을 뒤덮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는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아멘하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따로 세우라는 명을 듣고 그대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금식하며 그들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성취하여 가십니다.
여러분, 바나바가 누구며 바울이 누구입니까? 얼마나 위대한 일꾼들입니까? 바로 그런 위대한 일꾼들이 안디옥 교회가 아멘으로 응답하고 따른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하고 따르고 드리면 하나님은 쓰십니다. 우리가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맡으십니다. 우리가 나를 부인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령이 시키시는 일에 아멘하면 하나님은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내 인생의 일들을 내가 다 채우고 정리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하실 몫들을 남겨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무슨 도움을 드리는 아버지의 기쁨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시면서도 오히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사용하시고 나를 축복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따르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맺음: 벌써 금년도 절반이 지나 갑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인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혹시 ‘인생을 살기 위하여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나를 위하여 인생을 살면 그건 바른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키시는 그 일을 발견하고 거기에 아멘으로 나를 던지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있으면 그 직장을 사명의 장으로 만들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 있으면 그 가정을 내가 할 선교의 현장으로 만들면 될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일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따르는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전천후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 돌리며 성령을 따라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성령님을 앞에 세우고 따라야지 라고 굳게 결심하면서 아멘하는 전천후신앙을 가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