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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n 10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먼저 섬겨야 합니다.

본문 :

본문: 막 10:42-45

영어에-기쁘다-는 말로 jo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joy를 가만히 어순을 들여다 보면 J O Y입니다. 즉 참 기쁨은 J 즉 Jesus First, O, Other Second, Y 즉 I third라는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참된 기쁨, 성경적 기쁨은 Jesus First, O, Other Second, Y 즉 I third로 첫째 예수님 사랑, 하나님 사랑, 다음은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 사랑, 이 사랑의 순서를 제대로 지키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참된 기쁨을 누리고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기쁨, 참된 행복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 제일주의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이웃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바르게 세워져 있어야 그가 바른 행복을 누리고 기쁨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빌2:3,4절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사용된 “기쁨”, 이 기쁨을 joy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joy가 어떻게 가능하냐? 이걸 예수 안에서 이룰 기쁨을 설명하기를 영어 joy의 어순 따라 J, Jesus First, O, Other Second, Y 즉 I, I third라고 풀이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이 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살 때에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바른 자세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말세 사람들의 특징의 첫째가 바로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자기 중심을 말합니다(딤후3장). 이 세대는 자기 사랑이 모든 것의 우선입니다. 이게 안 되면 모든 것을 그만 둡니다. 사업도 그렇고 봉사도 그렇고,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하여야 생각이 움직이고 몸이 따라 갑니다. 내게 도움 되지 아니하고 내게 유익하지 아니하면 생각이 따르지 않습니다. 물론 몸도 따라가기 않습니다. 그래서 참여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도움주려고 하지 아니하고 희생하려 하지 아니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말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남보다 내가 더 앞서고 인정받고 대접받고 그래야 살아간다는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던 그 가치관을 깨트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고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가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의 일생을 한마디로 요약, 평가하여 나타낸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이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그 섬김에 따라 십자가를 지셨고 그 섬김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살아라고 가르치시는 주님이십니다. 한마디로 joy로 사는게 기쁨으로 사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Jesus First, 예수제일, Other Second, 이웃사랑, 그리고 Y 즉 I third 그 다음이 나,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 거기에 기쁨이 온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정신은 바로 희생입니다. 인생은 스펙이나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남을 위한 섬김과 나눔의 인생인가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정신으로 섬기며 살면서 기쁨 가득한 성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1. 섬김의 축복
43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주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으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낮고 천한 우리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벗이 되셨고 이웃이 되셨습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 하나님은 높이고, 높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셨습니다(빌2:10-11). 섬김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섬기고 세워주는 종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라는, 섬기고 종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도이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입니다. 그 정점이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심입니다. 십자가는 섬김의 표상이며 십자가는 인류 최대의 섬기심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의 목표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엡4:15).

주님의 가치관은 우리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과도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나’를 중심에 세워놓고 ‘나’가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고 섬김을 받으려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누가 크냐고 서로 다툴 때에 주님은 한마디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셨습니다. 즉 섬김을 받으려는 것보다 섬기려 하고 대속물로 주셨던 일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과는 완전히 달랐던 주님입니다.

주께서 사신 공생애를 보면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찾아가시고 그들을 대접해 주시고 그들을 섬기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함께하신 주님이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섬기면서 사람들을 풍성하게 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시고 입고 있던 옷가지까지 다 주셨고 온 몸의 피까지 다 흘려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에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세계최강인 미국의 대통령이나 러시아 수상이나 유엔 사무총장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곳에서 남을 섬김으로 일생을 사신 리빙스턴이나 마데 데레사 같은 분이며 R.A. 토레이 같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남들을 섬기고 세워주고 높여주며 타인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불태운 사람들입니다. Servant-hood, Servant-ship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태워서 남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섬겨준 사람들이며 섬김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섬김의 축복을 누리며 산 사람이며 남을 섬기면서 일생을 불태우다가 간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게 우리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게 바로 이 정신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세워주는 자가 큰 자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크게 섬기신 예수님을 가장 큰 이름, 이 예수의 이름을 만물의 주요 만주의 주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이 가르치심,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잘 기억하도록 합시다.

2. 섬기려면 종이 되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44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섬기려는 마음은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앉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섬기려 해야 가능합니다. 먼저 자신이 상대를 섬기려는 마음 이게 종이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종이 되지 아니하면 섬겨지지 않습니다. 나를 내려놓지 아니하면 내가 살아 있어서는 남을 섬겨지지 아니합니다. 섬기려면 자신의 허리를 굽혀야 하고 허리를 굽히는데서 상대의 신발을 닦아 주든지, 극 붙잡아 주든지 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나를 내려놓으면 남을 섬겨질 수 있으며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앞세울 수 있을 때에 섬김이 시작되어 집니다.

군대에 간 군인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지 아니하면 군인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회에서의 나를 다 내려놓고 군인으로서의 군대생활에 적응하면 그는 군인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보면 사회생활에 젖어 있던 자신이 부인해지지 아니하니까 ‘내가 이런 아니꼽고 힘든 일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하고 그러면 군 생활에 적응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기억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종’이라는 의식을 가짐이 복입니다. 쓰임받기 위하여 채면을 던지고 섬기기 위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굴레를 벗어 던져야 합니다. 눅9:23-24절을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며 이웃을 섬기며 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야 그 후에야 바르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내’ ‘나’가 너무 강하면 하나님도 잘 섬겨지지 아니하고 이웃도 잘 섬겨지지 아니합니다. 섬기려는 마음은 자기라는 것을 부인하고 내려놓고 아예 나는 아니야 그럴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특히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있거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을 내려놓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걸 내세우고, 그걸 자부심으로 그 바탕 위에 자신을 세워 둔 사람은 남을 섬기려는 자로 바꾸어지기가 무척 어렵고 힘이 들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아예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사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피조물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심도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그런데 직접 내려오셨고 그리고 남을 섬기고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때로는 남보다 먼저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셨고 아무도 가까이 하려하지 아니하였던 세리도 찾아주셔서 섬기셨으며 소외된 여인들을 맞으시면서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이라는 그 높디높은 위치를 다 내려놓으시고 아예 섬기려하고 많은 심지어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의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으셨습니다.

다비다는 자신을 내려 놓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을 진심으로 섬겼다가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습니다. 백부장도 자기를 내려 놓고 가난한 유대인들을 섬기고 세웠다가 예수님의 칭찬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역에 있었을 때에 나는 위치가 높았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에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뭐였습니다’ ‘나는 어떤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그리고 주님께 다가가야 남들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놓는 자만이 남을 섬기고 남을 높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훈련에 익숙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안고 품고 섬기려는 숭고한 마음들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많음에 감사드립니다. 그저 묵묵히 맡은 곳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땀을 흘리며 혹은 추위에도 열심히 일하는 그런 사람들, 그분들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예 우리는 Joy로 살자 라고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섬기며 살련다’ ‘나는 남들을 세워주면서 살련다’ 이렇게 결심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신앙에서도 성공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게 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 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님 나를 도와 주소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님 나를 도와 주소서

3. 어떻게 섬길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면 됩니다. 내가 사는 동안에 할 일이 있는데 그건 어떤 것보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산다는 확신입니다. 고전10:31-33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면 섬기며 살 수 있습니다.

2)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면 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질 때에 섬겨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위주로 생각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웃을 돕고 세워주고 그들의 편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섬기는 일이 가능해 집니다. 가정에서 보면 부부사이에도 상대를 세워주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내가 대접받으려 생각하면 늘 피곤합니다. 오히려 내가 상대를 세워야지 상대의 필요를 내가 채워줘야지 그러면 모든 것이 간단합니다. 사실 상대를 높이면 그게 내게 유익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 아내를 내가 종 부리듯이 하면 나는 종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됩니다. 내 아내가 나의 필요를 채우는 자로만 생각하면 결국 나는 내 필요를 채워 주는 그렇고 그런 존재와 함께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내 아내를 왕비처럼 채우고 세워주면 나는 왕이 되는 것이구요. 반대로 아내가 내 남편을 왕처럼 채워주고 세워주면 나는 자연히 왕비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상대를 세우고 높여 주면 따라서 나도 함께 올라가고 높아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동일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오늘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를 쓴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세요. 이 본당의 청소만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땀을 흘리면서 쓸고 닦고 했기 때문에 가능하구요, 성만찬을 준비하는 일도 그 정성을 들여서 하지 않으면 오늘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성껏 봉사하고 희생하고 그러니 예배에 차질이 없이 잘 진행이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점심에서 맛있게 먹는 점심식사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식사조를 짜고 식단을 짜고 시장을 보고 또 그것들을 다듬고 만들고 그리고 또 씻고 갖다 놓고 그러니 우리가 맛있게 먹고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남의 필요를 미리알고 만든 사람들입니다. 남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려는 사람, 그들이 섬기는 자들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섬길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식사하고 일어서면서 그 식탁을 정리하는 일, 또 의자를 밀어 넣어 제자리에 놓는 일들도 다 섬기는 일입니다. 주방에 가서 섬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사실은 그건 다 자기 복입니다. 그런데도 너무 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남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5). 예수님의 이름으로 남을 섬기면 곧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서로를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주일날 예배 시작 20-15분전까지 나와서 조용히 기도하고 준비하는 일은 예배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앞자리에 앉으셔서 예배를 드리는 일은 설교자를 섬기는 일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교회의 제직이면서 앞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뒷자리에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부서의 책임자가 되고 선교회의 장이 되어서 자기의 일을 정확하게 하는 일도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목사를 섬기며 성도를 섬기는 일입니다. 주일날 주차장은 처음 방문하는 자들이나 나중 오는 분들에게 양보하는 것도 엄청 섬기는 일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절 말씀입니다. 섬기시기 바랍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3)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10:32-33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인간이란 말이 위를 보는 존재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이웃이 위를 보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섬기는 일입니다. 꼭 내가 다 갖추고 그 사람보다 더 잘 나서, 다 알아서 섬기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섬기는 것입니다.

양화진에 가면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은 선교사들의 무덤입니다. 그들의 어린 자녀들도 거기 묻혀 있습니다. 100여년 전 우리 한국의 사람은 정말 절망의 나라였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환경이었는데도 그들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복음을 전해주려고 이 땅에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서양귀신이라고 환영받지도 못했고 박해와 조롱을 당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나누고 이 땅의 사람들을 섬기다가 풍토병에 들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이 또 여기를 찾아와서 그 일을 이어서 계속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묘지가 양화진입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남에게 유익을 주고 베풀고 나눈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섬겨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그런 섬김으로 이 땅에는 복음의 꽃을 활짝 피웠고 그리고 산업화를 이뤄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섬김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입니다. 

4) 상대를 세워주고 높여주면 됩니다. 그래야 섬김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가끔 이걸 바꿉니다. 성 어거스틴은 “인간의 비극은 종종 사랑해야할 대상을 이용하고 이용할 대상을 사랑하는 데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사랑해야할 대상이지 이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는 그 사랑의 대상인 사람을 이용하는 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이용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닌데 현대인들은 그 물질을 사랑하는 데에 커다란 비극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높여주고 세워주려는 마음을 가지면 섬김이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맺음:
우선 섬김을 시작합시다. 사람들은 내가 갖추고 나서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생각들을 합니다. 내가 남보다 많이 배우고 나서, 갖추고 나서, 그리고 남을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완벽하려 하면 안 됩니다. 너무 큰 것부터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일부터 섬김이 시작됩니다. 있는 자리에서 크든 작든 시작하면 됩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에 가서 봉사하지, 건강해지면 그때 내가 많이 봉사하지 그러면 봉사하고 섬기기 어렵습니다. 우선 시작하세요. 우선 이웃을 세워 주세요. 내가 섬기려고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채워주십니다. 그런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다 섬기고 봉사하는 자여야 합니다. 요즘은 색시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보다 나서서 봉사하고 섬기고 세워주고 일으켜 주는 알게 모르게 땀을 흘리는 그러한 사람들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우선 시작하세요. 나서서 섬기려고 시도하세요. 주님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선 시작하십시다. ‘나는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이다’라는 자의식을 확고히 가지고 나서면 됩니다. 주님은 그에게 힘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섬김의 축복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님 나를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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