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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08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말을 바꾸면 됩니다.

본문 :

본문: 약 3:1-12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만을 유일하게 말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눈을 뜨면서 잘 때까지 계속하여 말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게 사람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말의 역사였습니다. 창11장의 시날평야의 바벨탑 공사를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하신 말씀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로 시작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라고 판단하시고(6절),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라고 판단하시고 그들을 말이 통하지 않게 하셔서 흩으셨습니다(7). 그래서 바벨탑이 그친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말의 사건이어서 사람들의 말로 인하여 정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통계적으로는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오래 살고 장수한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목사인 저는 오래 살기가 어려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용기를 갖게 하고 새로운 사람을 살게 하기도 하지만 함부로 내 뱉은 말이 싸움을 일으키고 사람의 기분을 잡치고 남을 죽일 수도 있고 그럽니다. 말 한마디가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말이 천국을 이루기고 하고 말이 삽시간에 지옥을 만들기도 합니다.

병원에 가면 내과의사들은 사람의 혀를 보고 건강을 체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영적 건강도 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말에 인격이 달려 있고 말에 영적상태가 달려 있습니다. 마27:73절엔 “네 말이 너를 표명한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그 사람의 출신지역도 알려주고 지식의 수준도 알려 주며, 그 사람의 정신수준, 영적인 상태까지도 알려 주고 내면을 잘 표명하기도 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말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오늘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말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에서도 말에 대한 경구나 속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 말라,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라,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내 뱉는 말은 상대방의 가슴속에 수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 있다. 어떠한 충고일지라도 길게 말하지 말라. 리더의 제1조건은 화술이다(speech)이다 는 등 수없이 많고 많습니다. 모두가 다 아름다운 말에 대한 권면이요 말을 잘 사용할 것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고보 선생은 이 말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2절, “우리가 다 말에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3절,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5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10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이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야고보는 엄청난 가르침을 경고하고 알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말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들로 바꿔야 할까요? 우리가 사용할 말들이 어떤 말들입니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하기
9,10절,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괴로워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입으로 찬양해야 하는데 그 찬양하는 입으로 형제에 대하여 저주하면 그건 하나님이 듣기 힘들어 하시고 찬양받으시기 괴로워하신다는 말입니다. 말2: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우리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건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말로 우리 하나님께서 괴로워하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소름끼치는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은 골라서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한 마디로 신앙고백적인 말입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고백하는 말들입니다. 실제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흥분하여서 엄청난 보상을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16:17-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의 엄청난 신앙고백을 들은 우리 주님은 그 고백에서 너무나 흥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은 또 엄청난 보상의 성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극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베드로의 좋은 신앙고백에 대하여 우리 주님이 만족하시며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엄청난 반응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들은 이런 위력이 따르게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우리 주님은 자주자주 사람들의 믿음의 고백에 흥분하신 것을 봅니다. 마15장에 가나안 여인이 아들이 죽어갈 때에 예수님을 초청하고는 우리 집에 오실 필요까지 없다고 하면서  “한마디의 말씀으로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칭찬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의 신앙적인 고백을 들으시면 흥분하실 정도의 반응을 하시던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신앙적인 고백에서는 즐거운 반응을 하시며 칭찬하신 분이십니다.

롬10:9,10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막11: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렇게 예수님은 고백의 말을 듣기 원하십니다. 38년 된 환자에게도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주님은 그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도록 조치해 주셨습니다. 믿음의 신앙고백에 감동하시는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고백을 잘 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고백적인 말,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신앙고백적인 말, 그런 말로 하나님을 감동하시도록 하는 성도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다윗도 그런 감동의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그게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성경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여” 이런 말씀은 다 신앙고백입니다. 위대한 인물 다윗이 되었던 비결이 바로 이런 신앙고백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그 말대로 그렇게 인도하셨고 축복하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백의 말씀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시인하면 그 시인대로 일이 일어나고 그대로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한 목사님은 “나는 믿는다, 나는 믿는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라고 계속하여 시인하면 그 시인 그대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8장에는 백부장의 고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부장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고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고백에는 놀라운 역사가 따르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아멘의 말하기
고후1:18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아멘의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말들을 할 것들이 없습니다. 아멘의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없기 때문입니다. 미쁘신 하나님, 믿음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들의 아멘을 그대로 우리들의 삶에 실행하여 주시는 미쁘신 아버지이십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 아멘에 그대로 이끄시고 축복하시는 하늘의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아멘이요 예만 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멘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얼 요청하면 믿고 그대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할 수 있다고 확신하셔서 아멘을 기대하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현장에서 언제나 아멘하며 그렇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 한 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게 살으셨다는 말입니다. 3년을 그렇게 예로 사셨고 나아가서는 33년 일생 전부를 그렇게 예로만 사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일생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만 하여야 합니다.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저도 ‘예’만하고 ‘아니라’는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찬송가에는 그 어디에도 아니라는 부정적인 찬양가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못한다는 부정적인 가사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는 형통이 있구요, 감사가 있구요, 권세가 있구요, 능력이 있구요, 아멘만 있습니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기 때문입니다.

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사람들 앞에서도 아멘의 말을 하고 긍정의 말을 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때로 부정적인 말이 입에 튀어 나오는 그 순간에 우리는 우리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할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재갈을 물려야할 자리에서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자기를 속이게 되고 그의 경건은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재갈 물어야 할 그 자리에서 재갈 물리고 이어서 아멘으로 대응하는 용기, 이게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들로 세워가는 덕목입니다. 이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용기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환경이 결코 아멘이 안 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긍정하며 아멘으로 나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놀드 파머라는 골프계의 대부가 있습니다. 그분은 10살 때 아스팔트에서 넘어져서 팔굼치를 다쳐서 왼손이 오른손 보다 20cm나 짧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는 골프 챔피언이 되리라”라고 늘 노래하며 연습하였습니다. 입버릇처럼 얘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농담하지 말라고 하였고 그리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골프계의 챔피언이 되었고 그리고 전설적인 골프 황제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아멘의 말을 하고 언제나 가능하다고 말한 그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종교회의가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그때에 본문의 기록자 야고보가 다 듣고 가만히 중재합니다.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뜻이다. 다만 몇가지를 조심하게 하자라고 냅니다. 그리고 그 의견이 채택됩니다. 복잡한 회의자리에서 일이 되도록 만드는 언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쉽게 의견을 내지도 않습니다. 파괴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일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긍정의 사람입니다.

생활 속에서 말로 결단을 요구받을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아멘으로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십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아멘의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앞세우고 자기의 유불리를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나를 다시 한 번 다잡고 아멘으로 다가가면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아멘의 말을 하는 성도이길 축복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는 성도이길 축복합니다.

3. 감사의 말하기
엡5:4절,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감사의 말을 하기를 기대하십니다. 특별히 누추한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품위에 맞지 않은 그런 말들을 하지 말고 남들을 희롱하고 비판하는 부정적인 말들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싶을 지라도 오히려,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민14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12지파의 대표자 12명을 가나안에 들여보내 탐지하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40일 간 탐지하고 돌아와서 정탐보고를 합니다. 그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반응합니다.

1,2절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는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때 그 모습을 안타까이 지켜보시던 우리 하나님이 도저히 참지 못하시고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26-28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무서운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보세요, 우리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 다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 말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말대로 우리에게 시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감사의 말을 하면 그 감사의 말대로 역사하시고 불평의 말을 하면 그 불평의 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무섭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던 사람들은 결국 광야에서 전부 죽었습니다. 몽땅 죽었습니다. 정말 그들의 한 말들이 하나님께 들린 그대로,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들도 그들이 한 그대로 가나안에 입성하였습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우리가 말한 그대로 듣고 실행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91장입니다.

1.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내주 참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곳 내가 이를 때면 저 바위에 숨기시고
주손으로 덮으시네

2.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내주 내 모든짐 벗기시네 죄악에서 날 끌어 올리시며 또 나에게 힘주시네
3.측량못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주사 큰 기쁨중 주님을 찬양토록 내 생활을 도우시네
4.주 예수님 공중에 임하실 때 나일어나 맞이하리 그 구원의 은총을 노래하리 저 천군과 천사함께

우리도 끝까지 감사의 말을 하도록 합시다. 끝까지 아멘의 말을 하도록 합시다. 끝까지 예라는 말을 하도록 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말로 말을 바꾸면 됩니다. 아멘의 말로 말을 바꾸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사용하는 일상의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4. 축복의 말하기
눅10:5,6절,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을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벧전2: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서로의 사이를 다리 놓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다리 놓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냐? 나는 세상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그들을 이끄는 중재자일 뿐 아니라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누구라구요? 우리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그분, 우리 하나님, 우리 주님,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온 세상에 전하고 선포하게 나누게 하려는 책임자들입니다. 그런 책임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축복하고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중재하며 그들에게 복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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