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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n 19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말씀을 믿고 가더니
본문 :
요4:43-54
고등종교의 가장 중요한 2요소는 그 종교의 신앙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종교의 신앙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두가지 요건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그건 미신에 가까운 무당종교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유교를 종교로 분류하는데 주저하는 것도 바로 유교는 부모 공경을 이야기하는 내용은 있지만 그러나 믿음의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윤리에 가깝게 분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고등종교는 반드시 믿음의 대상이 있고 그 믿음의 내용이 확실하게 있는 법입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두 가지를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즉 기독교 믿음을 가지려면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믿어야 하는데 우선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무얼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이 분명히 계심과 그 하나님은 나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하게 믿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에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그 접촉점이 바로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선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들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만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대화하고 믿음으로 교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행위를 믿음으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접촉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루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엄청난 비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입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 18:8에 나타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이 탄식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믿음을 만나볼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말씀입니다. 믿음다운 믿음, 주님이 성도가 가져야 한다라고 생각하시는 그 수준의 믿음, 이런 믿음을 정말 만나볼 수가 있을까라는 안타까움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어떠합니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요한복음은 이 믿음의 대상자이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인도하심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이 믿음에 대하여 3차례 언급합니다. 4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5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3절,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주님은 이 믿음에 대하여 확실하게 가르치시고 말씀을 하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강조하고 언급하신 것입니다.
본문에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갈릴리 남부의 조그만 고을 가나에 가자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이 죽어간다고 고쳐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믿음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1. 믿음을 찾으신 예수님.
2-4절,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예수님은 지금 사역하시던 그 지역인 유대를 떠나서 고향이 있는 갈릴리 지역으로 가시려고 출발하셨습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싫어하고 기피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마리아로 통행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에 들어가지 않고 빙 돌아서 갈릴리로 가는데 예수님은 직적 그 길 사마리아를 바로 가서 수가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수가성에 가셔서 이방 여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그런 한 여인을 만나셨고 그와 대화하시면서 믿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건입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올라가셔선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은 들어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갈릴리바다 근처로 올라 가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친히 설명하십니다.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44). 즉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고향 나사렛은 지나시고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사마리아는 가셨을까요? 그 이유가 궁금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고 사마리아에서는 믿음의 여인을 만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향은 피하고 사마리아는 통과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찾아 발견하려 하시고 그 믿음을 키우고 발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로 들어가셨고 수가성에 가셨고 그리고 여인을 만나셨고 그리고 대화하셨고 그리고 그에게서 믿음을 발견하여 그 믿음을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하여 그 동리에 믿음확산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39절,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1,42절,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을 믿음으로 인도하고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인도하고,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믿음의 확산과 전파의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고 그의 믿음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으로 하여금 그 동리에 돌아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기의 믿음을 전파하게 하셨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은 믿음 안으로 돌아왔고 이렇게 하여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더욱 더욱 확산되어 갔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런 하나님의 믿음확산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우리도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누구든지 믿음이 없으면 배척당합니다.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이 배척하시고 예수님도 배척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냥 지나가 버리고 예수님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찾아가시고 사랑하시고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하여 그와 같이 일을 하시려 합니다. 그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찾으셨고 이삭을 찾으셨고 모세를 찾으셨고 그리고 다윗을 찾으셨고 마리아를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서 그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눈에 뜨이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셨습니다(요20:27).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아멘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없는 사람들, 믿음 없는 교회, 믿음 없는 공동체 거기는 피하여 지나가십니다. 그들에게 에너지를 쏟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준비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찾아가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도록, 언제나 주님이 우리를 찾아 주시도록 믿음으로 준비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45절,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사마리아에서 사역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 나사렛을 지나쳐 갈릴리로 바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랬더니 갈릴리 사람들이 나와서 “그를 영접하니”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고향사람들은 배척하는데 오히려 예루살렘에서 더 멀리 북쪽으로 떨어져 있고 고향에서도 떨어져 있는 갈릴리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복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와 동일합니다. 믿으니까 영접하고 영접하니까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잘 영접하고 예수님을 잘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면 그는 틀림없이 불신자입니다. 그러나 따뜻하게 영접하고 받아들이고 모셔 들이는 그는 분명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님 찾아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영광중에 계신 주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고 우리 구주 모시어 영원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찬송가 535장입니다. 영접하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영접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영접하고 예수님을 언제나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모시어 들이면서 믿음의 사람들로 사시기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다음은, 45절,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니 선입견이 좋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이미 지난 명절에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의 하시는 사역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대로 이해할 수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사렛 사람들처럼 오해하거나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로 이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놀라운 능력의 말씀을 권세있게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아니 이분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메시야야 분명해’ 그렇게 믿고 확신한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보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고 아멘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누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냐?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냐?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받아 들이고 믿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확인하였고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경험하면 제대로 믿고 잘 잘 믿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경험하고 확인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아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순수하고 큰 믿음을 가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제대로 보고 잘 볼 수가 있습니까?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내 눈 앞에 보이고 나타나는 것만으로 보고 판단하기보다 영안으로 보고 듣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보고 깨닫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눈을 달라고 기도하고 그런 그러한 영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주여, 나에게 영안을 밝혀 주세요” “주여, 나에게 하나님의 역사와 역사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나를 이끌어 가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유심히 보세요. 그걸 읽을 줄 알아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좋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고 제대로 잘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게 좋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현장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현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좋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자리에서 좋은 믿음을 키워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경험했습니다. 이삭이 경험했습니다. 야곱도 그런 현장을 수도 없이 경험하였고 모세도, 아론도, 이사야도 엘리야도 수도 없이 경험하고 터득하여 믿음을 키우고 길렀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과정을 경험하여야 그래야 좋은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선입견을 가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설교의 말씀을 받는 데도 같습니다. 사람의 과거를 생각하고 미리 판단해 버리면 그만큼 정확하지 못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러면 신앙이 제대로 잘 자리지 못하고 마는 밥입니다. 순수하십시오. 믿음으로 아멘하세요. 갈릴리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보고 들은 대로 아멘하고 보고 들은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십시오. 주님은 그런 믿음을 칭찬하시고 반기시는 분이십니다.
3. 고난이 믿음의 기회로.
2일이 지나고 나서 예수께서 드디어 수가성을 떠나서 갈릴리 가나에 도착하셨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이미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첫번째 기적을 베풀었던 마을입니다. 이 작은 고을에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엄청나게 많이 나 있었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다시 보고 싶어하고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갈릴리 가나 동리에 기적의 주인공이신 예수께서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잽싸게 예수님 달려오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갈릴리 지역의 관할을 책임지고 있었던 분봉왕 헤롯 안티바의 신하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가버나움 사람인데 그의 아들이 병이 들어서 거의 죽게 된 상태였습니다. 아들의 병을 보고 어떻게 고칠 능력이 없던 이 왕의 신하는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47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불행히도 그의 아들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간청하며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믿음은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살려 주세요. 도와 주세요.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요청하고 부르짖는 것이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는 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기도이며 이것이 겸손입니다.
5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주님의 엄숙한 선포의 말씀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네 아들이 살아 있다.”
그 아버지가 믿고 가다가 자기에게로 오는 종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서 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고 그리고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온 집이 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세상인지 모릅니다. 그 중에서도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금요기도회에서 저는 치유의 기도를 자주 드립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성도들에게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말하고 기도를 간절히 드렸습니다. 마치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어떤 성도님이 목사님이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그러셨는데 손을 얹을 곳이 없더래요,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다고 그러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제가 “세상에, 이렇게 건강하다니, 이런 복을 받으셨구나” 라고 생각하니 무척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 여러분들이 모두 모두 그런 건강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돌아보면 아픈 분들이 너무나 많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인데 그런데 허리가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목이 아프다, 다리가, 관절이,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이 할 수가 없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이러한 우리 주님의 선포가 너무나도 절실합니다. 그래야 고칠 수가 있습니다. 현대의학이 다 못 고치고 의술이 제대로 치유를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아프고 병들고 그럽니다. 이제 주님이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그러셔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납니다. 그러면 일어납니다. 주님이 선포하심, 이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에게 믿음을 키우시기 위하여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사람을 보시는 것은 외모도, 능력도, 그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사상도 아닙니다. 오직 그가 가진 믿음을 키우고 믿음을 발전시키고 믿음을 향상시키고 그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관점이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고 믿음이 있어야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람이 우리 주님을 만나는 접촉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 그 유일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만나고, 믿음의 교제하고, 믿음으로 소통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유심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믿음을 기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왕의 신하는 그 아들이 병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온 집안의 믿음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닥친 불행이 불행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믿음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게 생산적인 사람이요 그게 발전적인 인생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힘겨워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때로는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때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야말로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어가듯이 우리의 희망도 죽어가고 우리의 계획도 접어야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까? 그래서 절망하고 그래서 정말 너무나 힘들어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상황을 우리의 믿음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가야 합니다. 갈릴리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 집으로 청하던 왕의 신하처럼 여러분도 우리 주님을 만나서 청하십시오. 내 문제에 청하시고, 내 갈등에 그 예수님을 청하여 보세요. 도리어 내 믿음을 키우고 가족의 믿음을 세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키워가기를 기다리십니다. 남모를 고민으로 갈등하고 가슴 아파하지만 그러나 그런 갈등과 고민들이 오히려 터닝 포인트가 되어서 믿음을 키우고 경험을 하는 인생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만 있다면 그게 오히려 멋지고 생산적인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어쩌면 지금 이순간이 우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일어나는 놀라운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변화를 기대하십시오. 그 믿음을 키우는 기회를 기대하십시오. 기대하는 마음에 주님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약점이 오히려 잘만 활용하면 믿음을 키우는 놀란 기회요 재료가 될 수가 있습니다.
4. 믿고 간 사람들
5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그 결과로
53절,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온 집안이 다 믿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온 집안을 믿음으로 이끌었습니다. 믿기는 왕이 신하 그 사람이 믿었는데 그 결과로 아들도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온 가족들도 다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효과였습니다. 믿음의 역사였습니다. 믿음의 능력이었습니다. 놀라운 파급력이요 능력입니다.
나 한 사람이 믿음에 제대로 서서 있으면 내 가족들도 그 영향력을 엄청 받게 됩니다. 나 한 사람이 믿음에 반듯하게 서서 있으면 나만 아니라 내 자녀들이 영향을 받아요, 내 남편도 영향을 받아요, 내 이웃도 영향을 받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한계가 분명한 우리, 분명히 한계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영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 엄청난 축복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정말 너무너무 신나고 감격스런 일입니다.
지난 주에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미국의 흑인을 대표하는 엄청난 선수로 전 세계적인 영웅이었습니다. 1942년 미국의 켄터키 주 루이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무하마드 알리는 12세 때 아마추어 복서 선수로 복서로서의 출발을 알렸고,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프로로 전향해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석권하고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대와 1970년대 복싱계를 평정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승리로 흑인들의 인종차별을 끝내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케시어스 클레이였습니다. 그런데 은퇴 후에는 이슬람에 귀의하여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 이름으로 개명을 하였고 평생 이슬람 사람으로 살다가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운동선수였습니다만 그러나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그는 하나님 앞으로 오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간 사람입니다.
왕의 신하같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니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니라” 한마디로 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아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기다리십니다. 주님 말씀을 믿고 가세요. 강단에서 전한 말씀을 받았으면 그대로 믿고 아멘하고 가세요.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고장 난 믿음을 고치세요. 믿음을 변화 시키세요, 올바로 바꾸세요. 그때에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엄숙하게 선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믿고 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맺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