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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y 29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가자

본문 :

호14:1-3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그는 21세기를 일컬어서 ‘자본주의 이후사회’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특징 3가지를 들면서 ‘지식의 보편화 시대’, ‘네트워킹 시대’, 그리고 ‘세계화 시대’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그야말로 지식의 시대요 지식의 보편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지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화되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지식은 바로 바로, 누구나, 그 자리에서 검색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문명의 이기인 이 핸드폰이나 컴퓨터 하나만 잘 활용하여도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디가 좀 아프다, 이게 왜 이런가 증상을 치면 컴퓨터가 다 가르쳐 줍니다.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게 합니다. 심지어는 오늘 아침에 된장국을 끓여야지 그러면 된장국 맛있게 끓이는 방법 그렇게 컴퓨터에 치든지 핸드폰에 치기라도 하면 다 뜹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이제는 배워서 간다, 친정엄마에게 전화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지구촌 어디에서, 어느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 그걸 담박에 압니다. 모든 것이 인터넷이 다 알려 줍니다. 그야말로 지식의 보편화 시대요, 네트워킹이 너무나도 잘 이뤄진 세대이며 전 세계가 하나로 묶여진 세계화시대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 ‘Knowledge is Power’라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머리에 띠를 묶고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암기하고 알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그 시절에는 정말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성실히 하였는데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말에 ‘알아야 면장이라도 한다’는 말도 있고 이와 반대로 ‘모르는 게 상팔자’라는 말도 있고 ‘식자우환’이라는 말은 뭘 알아서 괜히 손해를 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안다는 말과 연결된 격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헬라어로 ‘안다’는 말에는 ‘오이다’와 ‘기노스코’란 두 단어가 있습니다. ‘오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를 알아 그가 어디 사는지 알고 나이가 몇인지도 알고 그의 사회적인 지위가 뭔지도 알아 이런 것들은 모두 ‘오이다’에 해당되는 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기노스코’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제대로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내를 안다든지, 자녀가 부모를 안다든지, 연인끼리 서로 안다든지 하는 상태들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은 정말 서로가 깊이 있게 알고 속속들이 상대의 취미도 알고 습성도 알고 그의 장단점이나 그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다 아시는 ‘기노스코’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식 가운데 가장 놀라운 지식이 신지식입니다. 신지식이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피조물된 인간으로서 조물주를 잘 섬기게 됩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반드시 자신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섬기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탄식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1.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1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베리트, 즉 언약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를 갖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유일한 생령, 살아 잇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자녀를 기다리는 그런 마음과 동일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돌아오라 나에게로 나아오라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호세아 시절, 이스라엘은 지금 앗수르를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하며 친 앗수르, 친 애굽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스라엘 민족이 살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외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호세아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돌아가자”라고 외치며 권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여 주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살려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권고의 근저에는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자라는 걸 확인하며 부르짖는 호소입니다. 왜요? 간단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셔서 만드셨고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지키시며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붙잡고 계시고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지켜 보시고 다 알고 계시며 하나님이 앞으로도 나를 보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그렇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모든 인간의 시작과 종착이 바로 전능하신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이게 피조물인 인간이 가질 가장 중요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에게는 생체 나침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소본능이란 게 있습니다. 개가 집을 나가도 몇 십리 아니 몇 백리까지 멀리 갖다 놓아도 제 집을 찾아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잘 찾아 옵니다. 새들이 그 멀리 멀리 날아서 갔다가도 역시 제 둥지를 잘 찾아옵니다. 생채나침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도 이 생체나침반이 잇습니다. 창조시에 우리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으셨고 그걸 갖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이것이 우리 인간들에게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아버지이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문제 해결에 있어서 유일한 해답입니다. 오직 하나님입니다. 이걸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누구를 막론하고 그들의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해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목장대항 성경암송대회를 한다고 광고하자 열심히 암송준비를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이 이번에 외울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1,2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예수님이 가르치십니다. 이어서 주님은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13,14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16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고 약속하십니다. 26,27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약속하십니다. 31절까지 하나도 그냥 지나칠 말씀이 없이 고귀한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것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세요, 영광을 드릴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세요, 여러분,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도 들고 나아가세요, 그것도 받으십니다. 여러분, 정말 해결하지 못할 너무나 어렵고 너무나 까다로운 일들에서 고난 당하고 계십니까? 그것도 하나님 앞에 갖고 나가서 맡기세요. 그러면, 그러면 해결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에는 모두가 다 우리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그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우리 하나님, 그 하나님만이 나의 삶입니다.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세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세요. 하나님 앞에 엎드리세요. 이게 신앙입니다. 그래야 그대로 바르게 섬기고 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이것이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 모든 인류가 유일하게 살 길입니다.

 

2. “회개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2절,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되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라는 것은 즉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회개하되 단순한 말의 회개기도가 아니라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은 단순한 말의 기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 깊이 회개하면서 돌아가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이건 구체적으로 말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이 뉘우치는 마음만 가지고 가서는 안되고 구체적인 말로 하나하나 아뢰고 고하고 뉘우치고 그렇게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회개가 되고 그래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가 된다는 말입니다. 회개는 마음만 아니라 말로도 하고 하나하나 고하면서 차근차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고해야 제대로 된 회개라는 말입니다.

 

탕자처럼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탕자는 자기의 잘못을 직접 고합니다. 눅15장를 보면 그는 스스로 돌이켜 말하기를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보세요,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15:18,19) 그렇게 아주 구체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가서 아버지를 만나서는 말합니다. 21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내게 주신 그 분깃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이제 감히 아버지의 아들로 온 것이 아닙니다. 이제 종으로 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단순한 종입니다. 저는 저기 있는 저들처럼 단순히 종으로 살려고 왔습니다 라고 회개를 합니다. 이게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사람들의 자세다 그 말입니다.

 

왜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용서해 주시려고 그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돌아가면 반기십니다.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은 무서운 징벌하시려고 기다리시는 게 아니라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려고 기다리신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와서 진심으로 그 동안의 우리들의 죄를 하나하나 고백하며 뉘우치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회개의 기도를 들으려 하십니다.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원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2.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3.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겠네

우리 주만 믿으면 구원함을 받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우리가 받겠네

 

3. “하나님 앞으로 가는 사람은 결단해야 합니다.”

3절,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이라는 결단을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맺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마음의 뉘우침이나 고쳐 먹음, 또는 말로만 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생활을 바꾸고 가던 길을 돌려서 살겠습니다, 변화하겠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가던 방향을 돌려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르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 회개입니다. 한 마디로 이제는 나는 죽고, 나는 부인하고,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받아 주세요, 그러니 나를 용서하여 주시오, 이것이 진정한 제대로 된 회개입니다. 그걸 가르치고 깨우치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권면합니다. 이제는 앞으로 절대로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또 전쟁하려고 말의 힘을 빌려서 그걸 의지하지 아니하겠고 그리고 또 다시는 우리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것을 결심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여야 제대로 된 회개를 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기원 전과 기원 후가 확실하게 다른 사람입니다. B.C와 A.D가 분명하게 다른 사람입니다. 즉 회개하기 전과 회개하고 난 뒤는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눈에 띄게 달라야 합니다. 회개하기 전이나 회개하고 난 뒤나 다르지 않고 여전하면 제대로 제대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달아야 합니다. 이게 회개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결단하고 제대로 된 길을 흔들림 없이 잘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회개는 했다 뉘우치고 다시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한번 회개하였으면 다시 그 길로 가지 아니하는 그런 용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가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한 번 믿기로 결심하였으면 힘이 들어도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하고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고난의 길에도 동참하려고 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게 회개입니다.

 

성도들은 웬만한 일들에서는 강하게 서야 합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몽둥이를 휘두르면 정신이상자입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영적 정신이상자들이 되기 십상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마음에 걸리고 잘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믿음으로 이해하고 기도함으로 극복하여야 합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잘 넘기고 인내하여야 하는 건강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조금 상했다고 안보지, 아이 속상해, 그리고 마음이 상하고 삐치고 그러면 그건 속좁은 것입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 보지 그러면 안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많은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 열풍처럼 실시하였고 수많은 교회들이 이 훈련을 도입하였습니다. 교회가 실시하는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신자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는 신앙인으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적인 면”과 “사역적인 면”에 있어서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기에 앞서서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에 소홀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서 온전히 섬기며 사는 거룩성을 가진 사람들, 작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들의 각오여야 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세여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4. 새롭게 사는 길은 하나님을 대신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회개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을 실생활에서 맺어야 할 열매들이 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하나님을 대신하여 실행하여야 합니다.

 

1)약자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3절,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고아가 은혜를 입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6-27).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경건하여야 합니다. 어떻게요?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게 사는 자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혀를 재갈 물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나간 사람들은 특히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하여 경건해야 할 사람입니다.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을 속이는 자들인데 그들은 그 자신이 아무리 경건하다고 할지라도 그건 헛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들의 구체적인 경건은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고아들을 돌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힘들게 사는 홀로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을 테러하고 죽이고 하는 것들은 그건 결코 정당화할 수 없고 하나님이 정말 도우라고 하는 그런 대상자들을 위협하게 하는 악한 일들입니다. 고아들이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긍휼을 받나요? 회개하고 하나께로 나아온 사람들을 통하여 긍휼을 받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한 사람들은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노인을 공경하고 흰머리 앞에서 일어서라고 합니다.

레19:32절,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어린이를 돕고 어른은 공경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게 인간세상의 윤리입니다. 이걸 무너뜨리고 그저 힘대로 살아가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도 돌아가서 그 자리에서 인정받고 내 문제도 해결하고 그 자리에서 인생의 해결책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돌아가야 하고 찾아야 하고 만나야 하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선지자 호세야가 여기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3)경천애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맺음:

이 시대는 하나님께로 돌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의 지혜와 사람들은 원리로 세상을 지키고 세워가면 반드시 바벨탑 시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외칩니다.

 

9절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그렇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1.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2. 회개하며 나가야 합니다.

3. 회개하였으면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4. 새롭게 사는 길은 하나님을 대신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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