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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n 05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나를 던지라 그리하면 잔잔하리라

본문 :

욘1:11-15

요즘 극장가에는 영화 ‘곡성’이 인기입니다. 지난 5월 11일에 개봉이 되어서 이제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연인원 600만 명이 관람하여서 엄청 인기이고 이 영화가 미국에도 진출하여 인기몰이를 하려고 한답니다. 이 영화가 나오고 처음에는 영화 제목이 전남 곡성의 지방 이름을 따서 지었는가 생각했는데 한자로 보니 그거 아니라 곡성(哭聲), 즉, 곡소리 그것이었고 내용도 엄청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영화라고 합니다. 아내에게 같이 가서 보자니까 너무 잔인하고 무섭데요, 그래서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 ‘곡성’이 전라남도 지역인 곡성의 이름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곡성, 화순, 장수 등지에서 촬영이 되어서 그 지방, 곡성을 알리는데 엄청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곡성군 인구가 3만 명인데 주말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그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역인 곡성을 알리는데 영화 곡성이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곡성에 세계 장미축제가 열리는데 곡성인구의 8배인 23만 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걸 담당하여서 홍보에 열중하며 야간작업을 하고 귀가하던 39살 양 모씨가 곡성에서 광주로 가는 막차를 타고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 내려 마중 온 만삭의 아내 서모(36)씨와 6살 아들을 만났는데 남편 양씨가 앞장 서고 아내 서씨와 자전거를 탄 아들이 그의 뒤를 따라 집으로 가던 중에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면서 아들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그 순간 아파트 20층에서 뛰어내린 공무원시험 준비생과 충돌해서 그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불과 2m 사이였는데 그야말로 날벼락을 만난 것입니다.

 

엊그제 3일 장례식을 하였는데 그 장례자리에 20층에서 뛰어 내려 자신도 죽고 양씨도 죽게 한 그 공시생 25세 아들의 부모가 찾아와서 유가족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였는데 이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면서 모두가 이 시대의 아픔이라고 “그들도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겠느냐, 보상은 바라지도 않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하며 서로가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만삭의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게 한 그 청년에게 화가 났지만 그러나 서로가 분노보다 힘든 용서를 선택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스카이 출신으로 자기 지역을 홍보하는데 열중하다가 희생된 그 공무원의 희생과 안타까운 비극에 곡성 주민들도 눈물을 흘리며 상처를 어루만졌다고 합니다.

 

생각하면 오늘날 이 시대의 아픔들은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아무 사고없이 잘 살고 있다고 영원히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도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예측이 안 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정말 나에게 특별한 어려운 일들이 없다 그건 정말 엄청난 보호와 배려 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린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걸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이요 보호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믿음으로 정말 감사하면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경고의 메세지를 전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도리어 반대로 도망가다가 혼이 난 요나 선지자에 대한 글을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희생하기 싫어서 반대의 길로 가던 사람의 겪는 어려움입니다. 요나는 희생을 거부하다가 엄청난 비바람을 맞이하였고 결국은 희생을 각오하고 자기를 던져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ㅂ의 말씀을 듣고 희생하는 자입니까? 여전히 제 길로 가는 사람입니까? 우리 앞에 엄청난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런 고난의 시기를 견디면서 고생하지는 아니합니까? 이해되지 않는 풍랑으로 고생할 때에 요나처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잔잔하리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리고 공동체도 살리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2).

요나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1:2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외치라 그 악독이 내게 상달되었느니라”고 시작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당시의 니느웨는 12만 명이나 살고 있는 큰 도시입니다. 지금도 전남 곡성은 3만 명이 산다는데 12만 명은 큰 도시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가서 그들을 살려라는 사명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라고. 아주 상세하게 가서 할 일을 차근차근 상세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요나는 이제 요나는 가서 희생하면서 자기가 받은 말씀을 니느웨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전하여야 하는 하례입니다. 한마디로 희생하여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당시 니느웨가 너무나 타락하였고 그대로 두면 모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셨기에 요나에게 그 일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사명을 받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단순히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겨우 천국에나 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구원을 받아 엄청난 희생으로 인하여 새생명을 보장 받고 얻은 새사람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결코 값싼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시한 존재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기에 우리에게 향하신 기대가 대단함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런 존재감이 없이 그냥 지나다가 인생을 낭비하고 가 버리는 그러한 미약한 인물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에게는 어디로, 누구에게로 가라고 하시는지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바로 내 옆에 있는 남편에게로 가라고 하시지는 않는지, 내 아내에게로 가라고 하시지는 않는지 유심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내 자녀에게로 가라, 네 부모에게로 가라, 네 직장 동료에게로 가라, 하나님은 여러 가지, 정말 여러 가지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을 주시고 그 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우리 하나님의 일들이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잘 더듬어 보시고 잘 돌아보시고 잘 생각하여 보세요. 기도해 보세요. 찾아보세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세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 맡기신 그 일을 훌륭하게 잘 감당하기를 요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알고 그 일을 알고 그 사명을 잘 완수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을 맡았으면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한마디로 자기를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가야 합니다. 가서 전파하고 외쳐야 합니다. 시간으로 던지고, 몸으로 던지고, 물질로 던지고,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계시는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걸 찾아서 아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희생하여야 일이 성취가 됩니다. 요나가 그 일들 그대로 두고 도망 갔을 때는 그 일이 그대로 있었는데 나중에 희생하니까 그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38,39). 그렇습니다. 이런 고백과 희생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붙여주신 사람들, 그들을 모두 천국가게 하는 일이 우리들에게 주신 엄청난 사명이요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고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을 던지는 그러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하려고”(3).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 3가지입니다. ‘Yes’ 즉 ‘예’하고 바로 순종하려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또는 ‘No’ 즉 ‘아니요’라고 거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Yet’ “아직은 아니예요”라고 거절하지는 아니하지만 그러나 미루고 순종도 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즉 ‘Yes’와 ‘No’, 그리고 ‘Yet’ 아직은 아니라고 망설이고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그러나 요나는 반대의 'No'반응을 하였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Yes’도 아니요 ‘Yet’도 아닌 ‘노’라고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도저히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도대체 우리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일이 마음에 이해도 되지 아니하고 납득도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실 만큼 엉망인 그 니느웨로 내가 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요나의 생각으로는 그런 니느웨는 멸망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야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도시에 가라고 보내려 하시는 건지 도대체 우리 하나님을 자기의 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여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종을 거부하고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시는 분입니까? ‘Yes’와 ‘No’, 그리고 ‘Yet‘ 이 중에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Yes’하십니까?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아니해요, 이건 도저히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Yes’ 그러면서 순종하고 아멘하세요, 아니면 내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Yes’하고 나머진 다 ‘No’ 절대로 ‘Yes’ 못해 오직 ‘No’ 그러십니까? 이건 불행한 사람입니다. ‘내가 수용하지 못해요,’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럴 수는 없어요’ 그러면서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사람은 아닙니까?

 

이 불순종, 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못하겠어요, 도저히 순종이 안 되어요, 이것이 바로 불행의 시초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 있었는데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한다, 그걸 피하고 멀리 도망가고 말겠다는 생각이 비극의 시초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에 나에게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자 하면 불행해진다는 뜻입니다. 도망가고 말아야지 라고 일어나 도망가다가 보면 하나님 앞에 다시 잡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반대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듯이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반대방향으로 열심히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걸 실행하기가 싫어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우리는 아니냐 그 말입니다.

 

말은 쉽습니다. 생각도 쉽습니다. 그러나 순종이 없다면 말도 생각도, 앎도 배움도 소용이 없습니다. 순종할 때, 지식은 사건이 되고, 말씀은 역사가 됩니다. 신앙은 순종하고 따를 때 비로써 신앙입니다. 해보지도 않으면서, 말만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순종이 없으면서 듣고 배우는 것도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낯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을 뵈오려고 다가가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만나고 그리고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 하시려고 기다리고 서 계십니다. 힘이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세요, 순종하려고 노력하세요. 도망가지 마세요. 피하지 마세요. 숨어 있지 마세요, 나아가세요,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당당히 자기를 세워 가세요. 그리고 맡겨진 그 일에 성실하세요. 지금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으세요. 우리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4절,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심판을 받을 니느웨는 사마리아에서 북동쪽으로 750여㎞ 떨어진 곳으로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과는 원수이며, 점령지나, 포로들에게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나라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에서 3200여㎞나 떨어진 지중해 끝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가는 중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했는데 요나는 큰 배를 타고서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하나님은 그 광경을 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움직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그렇습니다. 요나 한 사람 때문에 그 때까지 조용하던 그 바다에 대풍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풍랑입니다. 조용하기만 하던 그 바다가 하나님이 대풍을 보내시니까 갑자기 그만 대풍으로 인하여 바다도 배도 사람도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풍랑이 휘몰라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고 피해 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대목에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대풍을 내리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대풍을 내리셨듯이 우리의 인생에게 대풍을 내리셔서 풍우대작하게 하실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대풍이 오면 ‘요즘 경기가 그래서,’ ‘정치가 잘 못해서’ 또는 ‘세상이 다 그런데 뭘’이라고 단정하고 탄식하고 그냥 지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가끔은 우리 하나님은 “이 풍랑은 바로 너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순종하는 교회의 지도자들 때문에 교회가 힘들고, 불순종하는 누구 때문에 어느 공동체가 힘들고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풍우대작할 때에 물결 높이 일 때에 왜 그 풍우가 대작하였는지를 유심히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닌지 말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의 가져야 하는 신앙적 자세입니다.

 

가끔 자녀로 인하여 엄청 고생하는 가정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 부모는 ‘아이고 저 자식 때문에 이 팔자야’ ‘저 자식만 없으면 내 팔자가 필 텐데’ 그럽니다. 그러면서 자식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네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네가 자녀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이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씀하신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역사에서 정치가들의 잘못된 정치 때문에, 경제인들의 잘못 운영한 경제활동 때문에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너희가 잘못하여 이 풍랑이 온 거야’라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그 배를 구하려고 야단입니다.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요나는 배 맨 아래 밑층에 들어가서 잠을 잡니다. 풍랑이 일었습니다. 배에 실었던 물건을 바다에 내 버렸습니다. 배가 깨어져 갑니다. 사람이 죽어 갑니다. 엄청난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정말 죽기살기의 경각에 달렸습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살리려고 사람들은 엄청나게 야단합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맨 밑층에 내려가서 깊은 잠을 잡니다. 쿨쿨 코를 골면서 잠을 잡니다. 그 위기에도 전혀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발생하고 있는지를 전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감도 없구요, 미안하지도 않구요, 그래서 그저 잠만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풍랑은 일고 배는 깨어져 갑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그를 휘감아 있는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이 소돔 고모라가 불탈 때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불 태웠지 단순히 그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의인 10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습니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는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역사를 바르게 이끌어가고 책임 질 사람은 우리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을 제대로 지도하고 인도할 책임은 우리 교회에 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지금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지금의 우리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내리는 대풍이 없기를 바랍니다.

 

7절,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풍랑이 너무 세니까 살 여망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정말 요나는 대책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는 배 밑에서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요나를 찾고 계셨습니다. 일어나고 이 일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선장을 보냅니다. 그 선장이 잠자는 요나에게 다가가서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재촉하며 잠자는 요나를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라고 말입니다.

 

아마 이 말을 들은 요나는 덜커덩 겁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가는데 그곳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를 부르고 찾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하나님의 역사이었습니다. 불순종하는 요나를 억지로 순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야 요나도 살고 니느웨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가끔 하나님은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순종의 자리로 불러 내어 옵니다.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잠언16:33절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피하려고 해도, 때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꼼짝도 못하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나 너무나 신기한 일입니다. 이게 우리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앞에 풍우대작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이런 상태로 배가 깨어져 가고 가진 그 귀한 것들을 바다로 내어 던져야 하는 그런 때는 없습니까? 이건 아닌데, 이럴 수가 없는데, 그런데 도저히 붙잡을 수는 없고,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그렇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깊은 바다 맨 밑에서 쿨쿨 잠을 잘 도 자고 있는데 그런데도 왠지도 모르게 불안하고, 그리고 사람들이나 환경은 나를 자꾸 깨우고, 이상한 일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건 말입니다. 그건 순종하여 무릎을 꿇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건 지금 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4. “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요나에게 묻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가라고 열심히 찾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넌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제비가 뽑혔으니까요. 그 때 요나의 대답입니다.

 

9,10절,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드디어 요나는 이 풍랑이 바로 불순종한 자기의 연고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멀리 멀리 도망가려고 노력한 자기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고백합니다. 요나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요나는 고백합니다. 이 풍랑이 나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나의 연고라고 고백하는 요나입니다. 한 때 우리 사회에 ‘내 탓이요’라는 캠페인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사회는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라고 노래하는데 우리는 ‘내 탓이요’라고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나의 연고로 이러한 풍랑이 일었고 나의 연고로 이러한 고통이 왔다고 내 탓이라고 고백하고 내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어려우면 사람들은 그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누군가라는 희생자를 찾게 됩니다. 잘 안되는 집안이 그렇습니다. 잘 되는 집 안은 그렇지 아니하고 내 탓이라고 나의 연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섭니다. 그리고 해결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이 일어나 기어이 문제를 안고 해결합니다. 이게 제대로 된 공동체입니다.

 

손가락의 방향 이야기

 

제대로 된 사람은 잘못된 일, 문제가 된 그 원인을 내 탓,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볼 수 있습니다만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자신이 어두운 사람은 남의 조그만 허물도 잘 보입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어두운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자기가 빛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밝은 빛이 자기를 둘러 있어서 타인의 티가 전혀 나타내 보이지가 않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보고, 사람들의 밝은 면을 보고 그리고 밝고 환하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도 자녀가 힘들면 그것을 안고 부모는 기도합니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내가 기도를 덜 해서 그렇다고, 그리고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교회가 자리가 빕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성도는 그걸 보고 그 자리를 채우려고 기도하고 안타까워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이게 주인된 성도들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야 그 교회가 살아납니다. 그래야 그 성도가 제대로 서서 갑니다. 여러분, ‘내 책임입니다’ ‘내 탓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무릎꿇고 엎드리고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을 찾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잔잔하리라”(12).

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려고, 피하려고 불순종하려고 온갖 노력하였던 온갖 궁리를 다하던 그 요나가 드디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순종하려고 결단합니다. 이 풍랑은 바로 불순종한 나 때문이라고 실토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그는 알았습니다. 이 풍랑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나로 인하여 이러한 풍랑이 왔다고 말입니다. 드디어 선자지의 고백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고 말하는 요나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말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드디어 요나가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그 대단하던 풍랑이 멎었습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종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순종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가 순종하면 우리 주위가 살아납니다. 내가 순종하면 우리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자신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여 던지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여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가 순종하면 다 됩니다. 내가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순종하면 이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목장 이야기. 성장 했다, 거긴 반드시 희생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그런 고귀한 희생이 오늘날 잘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맺음:

6월은 희생한 사람들의 공을 기리는 달입니다. 희생하고 순종하는 신앙을 기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나만 예수 믿고 천국에 가겠다는 생각만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져주신 사명자들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책임자로 서야 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보고 세상을 다스리지 아니하시고 사명자들을 보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서 빛으로 사십시오. 소금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순장하면서 살도록 합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순종하여야 살아납니다.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고 공동체도 살아납니다. 자신을 던져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이 시대의 요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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