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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n 26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더라

본문 :

행6:8-15

전 세계는 지금 지난 주 목요일에 실시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문제로 온통 뒤숭숭합니다. 이 브렉시트란 영국이라는 영어의 ‘British’와 ‘나간다’라는 ‘Exit’의 합성어로 영국이 EU 즉 유럽연합에서 빠져나간다라는 말입니다. 영국이 위치한 유럽은 총 30개 나라가 있는데 그 중에 스위스와 노르웨이만 빼고 28개국 모든 나라가 다 연합하여 경제공동체인 EU를 형성하여 세계를 대상으로 공동무역을 해 왔는데 이번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인하여 영국은 이 EU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영국의 이 결정으로 인하여 전 세계의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흔들거리며 온통 혼란과 난리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이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느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한마디로 하면 불편하다는 이유입니다. EU에 남아 있으면 내는 재정부담금이 엄청나고 또 시리아 등에서 밀려오는 아시아 난민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더 받을 수가 없다, 이러다가 일자리를 그들 난민들에게 다 빼앗기고 말겠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살고 싶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영국국민들의 불만들의 표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같이 살기보다 혼자 살기’ 이것입니다. 더 이상 불만하면서 얼굴 찡그리면서 같이 살기보다 힘들더라도 이제는 나 혼자서 웃으며 살겠다라는 결정입니다. 그래서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입니다. 브렉시트의 결정이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의미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스펜서 존슨 씨가 <행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당신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의 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내용은 행복이라는 선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있다고 하면서 너무나 바쁜 일상에서 마치 단거리 경주하듯이 살다가 보니 그 선물을 놓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럴 때에는 무엇보다 우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조용한 시간을 가져 보면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행복의 첫걸음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 스스로의 인생을 가꾸는 법을 터득하면서부터 조금씩 바뀌게 됨을 말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면 그 영향은 내 이웃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 영향으로 이웃의 사람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차츰 행복하게 되어 가게 되고 그렇게 하여서 차츰 더 넓은 나인 우리가 또 행복하여서 마침내 서로를 더 배려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은 바로 이렇게 하여 자기 자신이 먼저 행복을 찾고 자신과 가까운 이웃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면서 그 행복의 지평을 넓혀가는 방법이 진정으로 행복으로 나아가는 방법임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만들고 가꾸며 내가 가진 것을 찾아서 귀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법입니다

 

사람의 몸과 관련되어 생긴 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몸, 이걸 왜 ‘몸’인가 하면 사람의 몸에는 팔, 다리, 입, 손, 귀, 가슴, 오장육부 등등 모든 것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지체들의 ‘모음’이라고 모음 모음 하다가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굴’은 왜 ‘얼굴’입니까? 얼굴은 ‘얼’과 ‘굴’로 모아진 단어인데 ‘얼’은 사람의 정신, 넋, 사상, 혼, 마음 같은 그 사람의 내면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고 ‘굴’은 동굴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 사람의 희로애락 진선미가 들락날락 하는 굴이라 해서 ‘얼굴’이라는 단어라는 해석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속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마음이 부끄러운 사람은 얼굴이 빨개집니다. 뭔가 깜짝 놀란 사람은 얼굴이 하얗게 변합니다. 너무너무 기쁘면 얼굴이 불그스레해 집니다. 착한 사람은 얼굴도 착해 보이고, 선한 사람은 얼굴도 선해 보입니다. 고집스러운 사람은 얼굴도 고집스러워 보이고, 간사한 사람은 얼굴에도 간사함이 묻어납니다. 마음에 교만과 욕심과 시기와 탐심이 가득한 사람은 아무리 화장품으로 바르고 얼굴을 변장해도 그 얼굴이 어둡고 우그러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겸손하고 사심이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그 얼굴에 대낮처럼 환하게 빛이 납니다.

 

미국의 40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나이 40이 되기까지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생각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의 인생이 얼굴에 베어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의 나이가 40세가 넘으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생긴 습관이나 사상이나 생각을 고치기가 힘들어지니까 40세가 되기 전에 자신의 얼굴을 만들고 다듬어야 합니다. 얼굴을 다듬고 고치는데는 좋은 화장품을 바르거나 고치기 보다 좋은 마음, 편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 감사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얼굴도 그에 따라서 변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면 아마도 스데반일 것 같습니다. 성경은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천사 같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스데반의 얼굴 모습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기록하였는데 그의 평소의 얼굴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서슬퍼런 공회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자격으로 서 있었는데 그때의 그의 얼굴 모습이 바로 천사 같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위험하고 공포의 자리에서도 천사의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원래 ‘스데반’이라는 이름의 뜻은 ‘면류관’이라는 의미입니다. 면류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최고의 영광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피택을 받은 안수집사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에도 이 스데반 같은 성도님, 안수집사님, 스데반 같은 권사님, 스데반 같은 장로님, 스데반 같은 목사님들이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스데반의 얼굴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최고의 영광스런 얼굴입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더라” 그렇게 변화하여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저의 얼굴이 그런 모습, 즉 천사의 얼굴과 같았더라 그렇게 되시기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광스런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격을 얼굴로 상징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슴에 심어두고 그 표현을 얼굴을 통하여 표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피조물 중에는 사람들만 이런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굴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사람 얼굴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각각 다 다릅니다. 70억 명이 사는 이 세상에서 똑 같은 얼굴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잘 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이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잘 생긴 얼굴도 없고 못생긴 얼굴도 없이 모두가 다 동등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동일하게 하나님이 만드신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개개인의 얼굴은 다 그대로 하나님의 신성한 작품입니다. 얼굴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천부적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내가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내 얼굴을 가지는 데에 내 선택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하나님께서 이대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머리, 눈, 눈썹, 코, 입, 귀 모든 것 하나도 내 뜻이 반영된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나에게 선택권을 주셨다면 나는 정말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얼굴을 가지고 살아갈 터인데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다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입니다. 물론 요즘은 성형수술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더 아름답게 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가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갤럽기관이 “당신은 자신의 외모에 비교적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비교적 만족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남성은 28%, 여성은 고작 13%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외모를 바꾸겠냐?”는 질문에 남성의 94%, 여성의 99%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수년 전에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맥스웰 멀쯔는 <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로운 얼굴>이라는 유명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것은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얼굴을 고친 후 새로운 생의 문이 열렸다는 개개인의 경험담을 모아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얼굴이 달라지니까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바꾸어졌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간증들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얼굴을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불만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은 마음 속에 있는 얼굴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은 외모를 아무리 바꾸어도 안 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얼굴 중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 보이는 얼굴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외형적인 얼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적인 얼굴입니다. 외적인 얼굴은 눈에 보이는 이 얼굴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얼굴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자화상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얼굴입니다. 외적인 얼굴보다 내면의 얼굴, 그 얼굴에서 평안과 평화가 읽혀지고 단정함과 안정됨이 읽혀지는 그런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내면의 얼굴이 바로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결정하고 심지어는 운명까지도 결정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위대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불만하는 자아상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낮은 자존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치유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새 피조물,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얼굴을 주셨지만 사람은 인상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얼굴을 통하여 그려지는 그 사람의 상, 그게 인상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내 얼굴에 빛이 나고 그대로 표현됩니다. 마음에 근심이 쌓이면 얼굴은 빛을 잃습니다. 인간의 얼굴은 마음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15:13).

 

사람은 인상이 좋아야 합니다. 잘 생겼다 못생겼다, 주름이 있다 주름이 없다, 그게 아닙니다. 선하고 착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기도로, 감사로, 찬양으로, 하나님께 다 맡김으로 인하여 그의 얼굴이 은혜스러운 얼굴로 변하고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표현되고 하나님의 창조하심의 의도가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러한 얼굴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여러분들과 저의 얼굴이요 우리 모두의 그런 얼굴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8절,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스데반의 얼굴이 어떻게 하여 천사의 얼굴과 같았는지 이유는 본문이 바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였구요, 하나님의 권능의 사람으로 사람 스데반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천사처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 그 얼굴이 바로 천사처럼 환하게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내 수고와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그 은혜로움이 그 자신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가 떨어지면 얼굴이 찌들어져 갑니다. 혹 요즘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왠지 불만이 자꾸만 터져 나오고 원망이 자꾸만 터져 나오고 불평이 달려 있다 이상하다, 그러면 그건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는 생태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져서 은혜가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은혜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간다 그러면 원망과 짜증과 불만이라는 찌꺼기가 나온다, 이게 당연하고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영적생활을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다시 기도를 회복하고 찬양을 회복하고 감사를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은혜생활을 하면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천사처럼 될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내면의 모습이 표현되는 소우주와 같다고 합니다. 얼굴은 두가지로 생각하여 나눌 수 있습니다. 기쁨의 얼굴, 영광의 얼굴, 그야말로 은혜 충만한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말 은혜가 떨어진 얼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감사로 넘친다, 은혜로 넘친다. 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하면 남들 앞에 자신있게 나타나고 신나게 웃으면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 가지는 얼굴이 바로 영광의 얼굴입니다. 내면에서 잔치를 하고 있으니까 그 얼굴에 그대로 표현되어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다 떨어져 버렸다,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하다, 또는 범죄혐의가 있어서 경찰에 잡혀서 언론에 공개된다 그러면 그 의 얼굴은 부끄러운 얼굴일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만 있으면 숙이고, 가리고, 파묻고 그럴 것입니다. 이게 부끄러운 얼굴이지요. 하나는 영광스러운 얼굴이라면 다른 하나는 부끄러운 얼굴일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얼굴은 은혜받은 얼굴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나타나는 얼굴입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모세는 그 얼굴에 광체가 나서 사람들이 그대로 쳐다볼 수가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4:30절에는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라고 하였으며 출34:35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안에서 살다가 내려오는 모세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그 얼굴에 광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가 내면에 있어서 그게 얼굴에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던 사람입니다. 자신은 별 볼일 없는 보통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은혜로 말미암아서 구원받았고 그 은혜를 맛보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은혜를 나누고 설명하고 증거하고 남에게 신나게 전파하는 전도자 스데반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 사랑을 남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전하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이렇게 얼굴이 환하게 펴지고 천사처럼 변하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의 저자 이지선씨 이야기가 얼마 전에 또 매스컴을 탔습니다. 주인공 이지선씨는 2000년 7월,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그가 탄 차가 폭발을 했고 불타는 그 화염속에서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살려냈습니다. 신체 55%에 3도 화상, 40번이 넘는 대수술과 재활치료를 통해 그녀는 다시 일어나 삶이라는 긴긴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는데요. 그녀는 사고 후, 자신의 달라진 삶을 기록해 갔고 2003년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출간해 그녀의 용기와 희망을 세상에 전하게 됩니다. 그녀는 보이는 얼굴이 없어졌고 화상으로 엉켜져 버렸지만 그러나 그 내면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 후 2004년 그녀는 유학길에 올라 미국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에서 각각 재활상담, 사회복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금년 2016년 5월, 미국 UCLA에서 “어떻게 하면 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전히 내면의 얼굴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는 얼굴이 알려지는 걸 아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가난한 것이 부끄럽다거나, 누추한 것이 부끄럽다기보다 오히려 내가 예수 안에서 은혜 생활을 하지 못함이 부끄럽다고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세월이 얼마입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면 그게 부끄러워야 합니다. 정말 답지 못하게 사는 게 부끄러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함이 부끄럽고, 목사가 목사답게 살지 못함이 부끄럽고, 장로가 장로답게 살지 못함이 부끄럽고, 성도가 성도답게 살지 못함이 부끄러운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국민은 국민답게,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우리는 모두 답게, 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떳떳하고 당당해지게 되는 법입니다.

 

얼굴이 잘 생겨서 보기에 좋은 관상, 인상이 좋은 사람보다 몸이 튼튼하여 신상이 좋은 사람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몸이 튼튼하여 신앙이 좋은 사람보다 마음씨가 좋은 심상이 좋은 사람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좋은 심상이 좋은 사람보다 그 사람의 영이 맑은 영상이 좋은 사람이 가장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상입니다. 물론 마음도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몸도 좋아야 합니다. 인상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이 얼굴보다도 몸이 튼튼하고 건강하여 아름다워야 합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몸보다는 마음씨가 곱고 생각이 반듯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반듯하고 고운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영이 맑아서 얼굴도 빛나고 말도 빛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다 은혜 받으면 다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무슨 일이든지 풀리고 은혜를 받아야 삶도 얼굴도 빛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법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스데반처럼 은혜가 충만하여 얼굴이 훤하게 빛나는 은혜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를 바라보는 스데반

7:56절,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된 데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늘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찼고 예수님의 것으로 가득 차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공회 앞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돌탄에 맞아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 장면이 바로 다음 장인 7장의 끝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말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은 한마디로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나 깨나 예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워하면 그 얼굴이 예수님처럼 바꾸어집니다.

 

늘 찬양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예수를 닮고 천사와 같아지는 법입니다. 이런 면에서 요즘 청소년들이 너무 연예인이나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을 좋아하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닮아가려는 경향은 그렇게 바람직한 현상이 못됩니다. 그게 심하여지면 우려하게 되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게도 됩니다. 청소년기에는 위인전을 읽고 역사책을 읽는 등 건전한 책을 읽고 그 내용들을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하여야 하는데 너무 T.V 위주이고 핸드폰 위주이고 뛰고 춤추고 감상적이기 쉽다는 점들이 문제입니다.

 

성령에 잡히면 얼굴이 빛납니다. 성령님이 그의 내면을 지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의하여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평안이 우리를 붙듭니다. 찬양이 있고 감사가 있고 은혜가 넘쳐서 그 얼굴이 스데반 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천사같은 얼굴,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은혜받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성령에 잡히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바라보는 데에 따라서 그 얼굴이 달라집니다. 스데반이 무엇을 바라보는 사람입니까? 스데반, 그는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바라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라보면 닮습니다. 쳐다보면 닮습니다. 그래서 부부도 살다가 보면 서로 닮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부가 같이 마주 앉아서 처다 보면서 음식을 먹고, 같이 처다 보며 말하고 같이 얼굴을 보면서 살기 때문에 서로가 비슷하여 지는 법입니다. 얼굴도 같아지고 생각도 같아지고 습관도 같아지고 가치관도 같아지고 버릇까지도 같아진다는 게 부부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다니엘 호오도온의 <큰 바위 얼굴>은 어린아이였던 주인공이 자라면서 전해 내려오는, 동네 앞산에 누군가 조각해 놓은 듯한 사람형상의 인물이 언젠가 그 마을에서 배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늘 그 생각에 사로 잡혀 지내는데서 시작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어린아이는 어느덧 희끗희끗한 중년을 넘어 황혼기로 접어들 무렵, 누군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갔는데 한 사람이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여기 이 사람을 보십시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저 바위속의 인물과 같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꼬마 어린이, 아니 이제는 황혼의 노신사로 변해 버린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쳐다보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얼굴이 바뀌고 변하고 닮아 가게 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신부가 되어서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눈을 맞추고 살아간다면 마음이 열리고 말이 열리고 행동이 열리고 하늘문이 열리고 천국가는 길이 환하게 열리게 되는 법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주님, 예수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나타내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차츰 차츰 주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법입니다. 쳐다보니까, 바라보니까, 사모하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바뀌고 변하고 닮아가는 법입니다.

 

4. 담대한 사람

7: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담대하면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아집니다. 사람은 결심하면 평안하여집니다. 어떤 일에 결단하지 못하면 안절부절하지만 그리고 그 불안함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러나 결심하면, 간단하게 결단하면 얼굴이 평안하여 집니다.

 

스데반은 예수로 살기로 결심하고 예수로 순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담대하였고 그래서 평안하였고 그래서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그러면 얼굴에 안식이 잇습니다. 평안과 감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결심하면 평안하여지고 결단하면 편안하여집니다.

 

사람은 맷집을 키워야 합니다.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시련을 견디고 그걸 넘어가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힘이 능력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 자신의 인생을 고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세요. 그러면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당당하게 이기그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담대함이 나오고 여기서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법이 나오는 법입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바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자신의 갈 길을 정해야 합니다.

 

맺음: 공회당의 사람들은 천사의 얼굴을 한 스데반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스데반은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합니다. 그는 살기가 등등한 사람들에게 돌로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었는데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아졌습니다. 그런 스데반을 맞이하려고 예수님이 보좌에서 일어서셨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천사의 얼굴을 한 스데반을 맞이하려고 예수님이 일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닮은 사람을 맞이하십니다. 전혀 얼굴이 다르면 맞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오늘 이 모습 이대로 하늘나라에 간다면 우리 주님이 맞이하실 것 같습니까? 상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스데반의 인격이요 스데반의 마음이었습니다. 살기등등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는 그 내면에 쌓은 은혜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역사를 바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얼굴을 보고 사울이 바울이 되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오늘 우리의 얼굴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닮은 얼굴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천사의 얼굴, 천사의 모습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으면 얼굴이 변화됩니다.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예수 닮아 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담대하면 편안하여집니다. 용기를 갖고 결단하면 그 얼굴이 빛이 납니다. 스데반처럼 천사의 얼굴로 살다가 그 얼굴로 하나님 앞에까지 가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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