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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10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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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구원받은 자의 자기확인
본문 :
본문: 요21:15-17
세상을 살다보면 확인하며 살아갈 일들이 많습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나는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확인합니다. 부모도 제자식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연인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가끔은 상대가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연말이 되면 인터넷에서 사랑의 온도계라는 것이 등장하여 자주 일반인들에게 그 온도계가 현재 얼마까지 올랐다, 얼마까지 올랐다라고 알리곤 합니다. 사랑의 도수를 책정하는 가상의 온도계입니다. 이 사랑의 온도계는 사회복지기관 등에서 모금활동을 하면서 실적을 알리고 수치를 알리기 위하여 만든 사랑지수를 재는 사랑의 온도계입니다.
이렇게 사랑도 확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이 얼마만큼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인지, 또 얼마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얼마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도대체 우리는 삶에서 이 제대로 이 사랑을 실행하고 있는 지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으레 ‘나는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나는 분명히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고 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사랑이 아닌 다른 것에 잡혀 있을 수도 있고 또 그 사랑의 농도가 옅어져서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전혀 아닌 도리어 책망을 받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 66권의 전체의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그건 바로 “사랑”이란 단어입니다. 사랑이 가장 위대한 단어입니다. 신구약에 수백 번 나오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실천하기 쉽고도 어려운 단어가 바로 이 사랑이란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이 사랑을 강조하시고 싶으셨느냐 하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실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십니다. 사랑이신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편견이나 편협이나 이기적이지 아니하신 사랑입니다. 전적으로 공평하신 사랑이요 위대한 사랑이시며 한도 끝도 없으신 사랑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성경전체에 걸쳐서 고루고루 다 분포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의 중심이 되고 핵심이 되는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구절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데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그 사랑의 바탕에서 신구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이 말씀이 역사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예언이라면 신약의 복음서는 이 말씀이 시행되고 나타나는 현장이요, 그 나머지 성경은 이 사랑의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다 잘 아는 이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이렇게 성경의 중심이요 핵심이며 지금도 가장 우리에게 귀하게 다가오고 귀하게 적용되는 핵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랑의 표현의 큰 두 가닥을 든다면 바로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입니다. 요3:16절이 핵심의 내용이라면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역사에 나타남이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바로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성육신하신 우리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신 결과가 바로 십자가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표현된 대속의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놀라운 사랑의 표현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성육신과 십자가, 이 두 명제가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이요,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걸 우리는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결코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지지 아니하셨을 것이기 때문이요, 또 오셨다 하더라도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결코 대속을 이루시지 못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육신하신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희생하셔서 돌아가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질문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 질문을 우리에게도 하시고자 합니다. 내가 사랑하여 구원을 받게 된 아무아무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계십니다. “일산교회 아무아무 집사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질문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님이 하시는 그 질문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랑받는 자의 자기고백이 필요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자기고백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저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창조주 하나님, 그분을 믿으십니까? 여러분들은 정말 그 창조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아니 사랑하신다면 얼마나 믿고 사랑하십니까?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 질문에 우리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지구상 70억 인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아니하시고 다 사랑하시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도 아시고 하는 일들도 다 아시고 행동도 아시고 형편까지도 그들의 마음도, 생각까지도 다, 다 아십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아시고 세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10:30절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실 정도로 우리의 모든 것을 소상하게 다 아시고 일일이 필요한 것들을 다 도와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 3위 1체의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창조주 아버지이십니다. 바다와 육지와 해와 달과 별, 우주 삼라만상을 지으신 그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흙으로 지으시고 직접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있는 생령으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오늘의 내가 있도록 하신 그분, 내 존재의 근원이 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마치 우리 부모가 있어서 내가 태어났듯이 하나님이 계셔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있게 하신 근원이시오 원천이신 분이 바로 창조주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런 일도 못하고 조금도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돌보심이요 배려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국경일마다 부르는 애국가도 그렇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동해물도 백두산도 다 있고 유지되고 지탱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 한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지가 있는 것입니다. 어찌 동해물과 백두산만 그러합니까? 우리 개개인들도 다 그런 보호로 유지되어 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만드시고 나를 지으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에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주시고 에너지를 공급하시는 우리 하나님, 그분 한분만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시는 유일한 원천이요 근본이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공급원이십니다. 만약에 그 분이 우리에게서 손을 떼시면 우리는 죽습니다. 시편 139:13-14절은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하나님이 나의 심장부를 다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의 오장육부 사지백체 신경세포 하나하나 모두를 다 조직하셨나이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이걸 만들었어요? 사람이 못 만듭니다. 너무나 나무나 신기한 이 모든 것을 다 알기에 다윗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는 고백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나를 지으시고 지금도 지켜주시는 그 하나님, 바로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는 이유는 이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1:17) 우리가 사용하는 좋은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들입니다. 세상 사는데 가장 필요한 것들은 다 위로부터 공짜로 온 것들입니다. 빛이 그렇습니다. 공기가 그렇습니다. 비가 그렇습니다. 오늘 도 내린 눈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것들 다가 위로부터 내려주신 것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돈 버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벌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잘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 귀한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지요.
-두번째로 예수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여 주셨고 그리고는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히 죽을 우리인데, 영원히 살도록 바꾸어 주신 분이십니다. 영원히 죽을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구원자이십니다. 희망도 없고 감격도 없고 그저 살다가 주어진 목숨이 끊어지면 그냥 지옥으로 갈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고 게시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영원한 구세주이십니다. 나의 놀라운 사랑의 대상이시며 나의 신랑이 되시는 분이시기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리고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시고 계시는 바로 그분, 나의 영원한 반려자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셔야 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하노라
-성령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보혜사이시기에 우리를 돌보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동반자이십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받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힘주시고 축복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성령님은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의 예배를 인도하시는 우리의 보혜사이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을 사랑하시고 그 성령님을 모시고 인생의 멋진 승리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감사하여 저절로 눈물이 나야 합니다. 내가 뭔데 나를 이렇게 사랑하셔, 내가 뭔데 나를 이토록이나 배려하시고 도우셔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눈물이 저절로 나야 합니다. 감사 기도가 저절로 나와야 합니다. 아멘이 저절로 나와야 합니다. 속이 상하고 억울하고 못 견디고 그건 구원받은 우리가 가질 마음태도가 아닙니다. 감사와 찬양, 감격과 웃은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그래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을 사랑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자기 고백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가 아는 길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길로서는 절대로 우리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성경 말고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 수 있는 길이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정령신앙입니다. 즉 ‘모든 사물에는 영혼과 같은 영적, 생명적인 것이 두루 퍼져 있으며, 삼라만상의 여러 가지 현상은 그것의 작용이라고 믿는 세계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오직 성경을 통하여서 아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인도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분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사랑하셔서 성경의 기록자들에게 기록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 기록물들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사랑의 편지입니다. 우리 인류는 이 편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이 성경을 읽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어디어디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다른 말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편지글이며 연애편지이기도 합니다. 편지란 쓰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서 어떤 대상에게 전달하여 주는 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글입니다. 그 하나님의 편지를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랑하고 애용하고 또 사랑하고 애용하여야 하는 글이 바로 성경입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들, 특히나 사랑한다는 내용의 마음을 담은 편지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내용의 이 글을 무시하거나 소홀하게 하면 안됩니다.
찬송가 563장
예수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 성경에 잘 쓰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이제 성경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결코 소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귀하게 여기며 성경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 말씀을 하나하나 정성껏 읽고 듣고 암송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성경을 정말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가십니까?
만약에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대수롭지 아니하게 취급한다고 하면 그 사랑에는 대단한 문제가 있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실하게 고백하셔야 할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나에게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요 편지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이 말씀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며 애용하며 지켜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 주신 우리 아버지의 귀하신 사랑의 마음이라고 말씀이라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책 중에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는 바로 그 책, ‘The Book’이라고 고백하셔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 설교의 말씀도 역시 최제봉 목사의 개인의 말이나 사상의 선포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실하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오늘 이 시간에 나에게 주시는 그 말씀으로, 나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으로 받고 아멘으로 아멘으로 응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말씀에는 축복이 있습니다. 말씀은 살리는 놀라운 에너지와 힘이 담겨져 있습니다. 딤후3:15-17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을 구원의 말씀으로 교육의 말씀으로 온전케 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사랑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성경을 정말 사랑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성경을 정말 하나하나 가르치고 이 성경으로 교육시켜 나가도록 합시다. 어려서부터 성경으로 교육받고 성경을 익히고 암송하고 생각이나 삶을 성경으로 채운다면 그는 분명히 성장하여서도 이 말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쉐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명령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과외보다 예배로, 밥보다 말씀으로 잘 키우고 무장시켜 나가기만 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놀라운 사랑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어느 신학자가 종교개혁자가 세웠다고 말하고 가르치면 그건 엄청나게 잘못 가르치는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고 만드셨으며 인도하시는 곳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예수님이 이 교회에 엄청난 축복과 권세를 주셨는데 곧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곳이요 그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약속을 보장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셔야 합니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교회는 또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남기신 우리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이 땅에 남겨두시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으며 지금은 이 교회를 몸으로 삼으시면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몸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교회, 정말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 바로 이 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동남아나 북아프리카, 중동에서는 급진적인 타종교인들이 교회당을 불태우고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을 죽이고 테러하고 몰아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저 멀리 시골로 도시 밖으로 내 몰아 버립니다. 지금 이슬람권, 불교권에서는 이 교회들이 얼마나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지 교회를 세워주고 감싸주는 시대나 지역은 복을 받았지만 반대로 박해하고 몰아내는 그 곳은 희망이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다니던 교회전통과 일치되지 아니하면 그 교회를 아주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예배를 드리다가도 그대로 나가요. 이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빈다. 물론 자신의 교회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은 좋지만 그것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다르면 그 교횔 무시한다거나 배척하면 그건 바로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과도 같아진다는 걸 모르는 일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말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예수님을 무시하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결과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핍박하고 무시하여도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는 어렵고 힘든 선택을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만히 보면 제가 이 강단에서 여러번 드린 말씀인데요 분명히 자신의 일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용기는 어렵고 힘든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사셔야 제대로 살아가는 자세라는 것 또한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사랑하시는 그 어렵고 힘든 선택을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는 우리가 가꾸고 세우고 만들어 가고 일으켜 가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성도들의 사랑이라는 거름으로 사랑이라는 땀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듯이, 그분이 몸 바쳐 세워놓으신 그 주님의 몸된 그분의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세워가시고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교회사랑이 하나님 사랑이요 교회 사랑이 예수님 사랑이며 교회 사랑이 성령님 사랑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8,9).
4.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 사람사랑의 결과물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보세요,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는 그렇게 구원하신 그 대상을 무시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나는 예수님을 하고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사람들은 싫어, 그럽니다. 그건 맞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분들이 사랑하신 대상도 사랑하여야 하고 그분들이 사랑하시는 대상을 미워한다면 그분들을 사랑하는 것이 못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람도 사랑한다 그래야 맞고요 아니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건 하나님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 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성립이 된다니까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13:34,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제자가 된다 그 말씀입니다. 사랑하면 제자다 그런 의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건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는 의미입니다.
서신서에는 더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요일4: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좁히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들입니다. 믿음이 좋다란 말은 사람들이 좋다란 의미와도 통하는 말입니다. 신앙이 좋다 그건 하나님의 사람들이 좋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좋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좋고 가까이 하고 싶어지고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지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지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지고, 이게 믿음이 제대로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을 믿음의 사람이라는 내가 그가 싫다 이게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 사람들을 우리도 좋아하고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좋아지는 사람이 되십시오. 웬지 모르게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가지고, 전화를 하고 싶어지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고, 그리고 위로하게 되고, 다가가고, 같이 앉아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자꾸만 사람들을 위하여 뭔가를 하게 되는 그런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좋아지는 사랑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신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맺음 :
베드로는 원래 자신있게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었던 사람입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아주 확신하며 말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 예수님은 또 다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을 점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지금 오늘은 우리 주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개인개인에게, 그리고 저에게 묻습니다. “일산교회 아무아무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구원받은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진심으로 어느 누구보다 나의 구원자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 합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시면 베드로처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우리 일산성도들이 모두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하는 데는 자신이 있는 그런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우리의 분명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나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기록한 성경은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사랑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대상인 사람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자기확인입니다. 모두 그런 확인을 하시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