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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Nov 12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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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사해야 할 이유
본문 :
본문: 시107:1~9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하려고 온 힘을 다 쏟으면서 전도하고 글을 쓰신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우리 일반적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살전5:17-18절에 기록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품으신 분명한 뜻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좋은 환경이든지 불리한 환경이든지 전천후로 기뻐하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늘 쉬지 않고 꾸준히 기도생활을 계속하고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범사에 정말 중심으로 감사하며 사는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정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제대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감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많이 있어도 전혀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감사할 이유가 있어야 감사하는 자도 잇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이유가 전혀 없어도 그저 감사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감사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감사할 이유가 있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배은망덕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돌아봐도 감사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런데도 감사한다면 그런 사람은 정말 바울의 권고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을 잘 실천하는 신앙인일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감사할 이유에서도 감사하고 감사할 이유가 없는데서도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신앙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모여 ‘왜 계속 돌릴까?’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비만증에 걸린 A씨는 ‘살빼기 위해서’, 가정불화가 심한 B씨는 ‘탈출하기 위해’, 낙천적인 C씨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등으로 말했습니다. 자기의 처지와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을 두고서도 서로 생각하는 바가 틀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농사꾼이 아니어서 농사를 짓지도 않으므로 추수감사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경우에는 추수감사절을 올 해에도 하나님이 지켜주심에 대하여 중심으로 감사하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감사는 인간의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단어라고 말을 합니다. 시편기자들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고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기억한 말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즉 감사제를 드리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감사가 믿음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을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 광야 40년 생활 중에도 맥추절을 통하여 감사절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감사의 조건으로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감사하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심을 감사하며 환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심을 감사하는 삶을 누려야 합니다. 또 감사할 이유가 있어도 하지 않는 자, 감사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 자, 감사할 이유가 없어도 하는 자가 있습니다. 감사가 믿음의 결론입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 목사는 “아무리 이해가 깊고 열심히 뛰어난 행동을 한다 할지라고 하나님을 향한 높은 감사심이 없다면 생명있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감사는 믿음의 결론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깨닫고 삶 가운데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가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1. 구원받았음에 대한 감사
2,3절,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그렇습니다. 시인이 감사할 이유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가장 먼저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이라는 이유입니다. 속량받았다란 대신 죄값을 지불하고,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놓아주고, 풀어주고 그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구냐? 여호와 하나님의 속량을 받은 자들입니다. 속량을 받아서 우리들을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각 지방에서 동서남북 사방에서 우리를 직접 모으셨습니다. 그래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천국의 시민권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요, 이 놀라운 은총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속의 역사입니다.
갈3: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달려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주셔서 그 보혈로 우리가 대속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서 속량함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몸값을 받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그런 우리가 예수님이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리고 그 보혈을 대속하셔서 대신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감사조건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중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의 가장 커다란 조건이며 이것이 제대로 된 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엡2:4~5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2: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추수감사예배를 드릴 때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거듭 거듭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악 가운데서 살다가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것처럼, 지옥으로 끌려가서 영원한 형벌과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 보혈로 대속하여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구원받은 감사, 가장 커다란 감사의 조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자녀였는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댓가를 지불하고 그리고 구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와 사망에 매여서 살아야 했습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나의 백성들, 절망과 굶주림에 갇힌 저들은 내 마음에 오랜 슬픔 고통의 멍에에 매여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 그런 것입니다. 이게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우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풀어 해방시키셨고 죄에서 구출하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댓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면, 그건 은혜가 아니라 노력의 결과요 땀을 흘린 댓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있을 수가 없고 감격이 잇을 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로지 감사요 감격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기도를 들어 주심에 대한 감사
6,7절,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4,5절, “그들이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고통 중에서 응답하셨으며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함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 중에서 건져주시고 환난 중에서 견디게 하시며 핍박 가운데 인내하게 하시며 우리가 부르짖을 때 소원을 들어주시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마디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이렇게 응답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이웃의 누군가와는 대화하고 이야기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숨쉬고 살아가고 그래야 속의 것들을 풀어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대화의 상대가 하나도 없이 혼자서 끙끙거리며 살아가야 한다면 그는 정말 답답하여서 질식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핸드폰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살아 가잖아요? 왜요? 말을 하고 대화를 하여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캄캄할 때에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여야 합니다. 그 대화의 상대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수단이 바로 기도이다 그 말입니다. 기도가 대화입니다. 기도가 나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회의 상대로 삼아 주셨다 그 말입니다. 그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성도들에게는 정말로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서 마치 광야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그런 힘든 시절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런 중에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런 일들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말은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장에 가면서 물건을 살 수가 있는 신용카드를 가지고 가는 것과 동일한 상태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 주머니에 현금은 없어도 신용카드가 있으면 전혀 걱정하지 않고 가서 시장을 보고 물건을 사고 그렇게 할 수가 잇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염려없이 물건 사러 시장에 가고 백화점에 가고 그럽니다. 기도가 물건 살 때에 필요한 신용카드 같은 바로 이런 기능을 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이건 정말 기가 막히는 감격할 일들입니다.
지난 주의 경험
지난 주에 한 집사님이 몸에 이상이 생겨서 수술하고 그 수술한 종양에 대하여 어떤 것인지를 조사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안 좋은 성분을 가진 것이라면 몸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가 있어서 저도 기도하고 주위에서도 기도하는 주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34:6절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그 본문을 적어서 제게 보내오셨고 그리고 그걸 암송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할렐루야!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할렐루야. 그래서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면 우리의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의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지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5). 아멘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그 얼굴이 부끄럽지 아니합니다. 아니 광채가 납니다. 빛이 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런 기도의 축복을 약속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마음에 원하는 그대로 다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NO!"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정반대로 응답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은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실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과 소원의 기도에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금 당장에는 기도가 응답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좀 더 기다려서 나중의 결과를 보면 더 좋은 것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는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고 감사함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7: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멘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도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도 우리가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34편은 다윗의 경험담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기도의 축복을 약속하고 기록합니다.
시34:4-6절,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지난 주일 오전 11시 30분쯤 미국 중부의 텍사스 주에 있는 한 교회의 주일예배 도중 괴한이 들어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겨냥해 마구 총을 쏴서 최소 27명이 사망했고 24~30명이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범인은 가정폭력으로 군생활을 불명예 제대를 하고 장모를 죽이려고 계획적으로 장모가 다니는 교회를 타켓으로 범행하였고 그리고 그 총격범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귀는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들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고 교회의 예배를 방해하고 복음확산을 저지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하여야 하고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책임을 진 사람들입니다.
3. 좋은 것으로 채우심에 대한 감사
8,9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셨습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35절에는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광야길을 걸어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그를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마디로 하면 좋은 것으로 주시고 만족함으로 채워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광야길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아니 지금도 광야길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때로 우리는 가물어서 마른 땅에서 고생하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다가 보면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광야에서 연못을 만나게 하시고 가물어서 바짝 마른 땅들이 샘물로 변화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엄청난 문제 속의 땅들이라고 하고 환경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늘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30절,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소원의 항구가 무엇입니까? 기도로 소원하는 그 항구, 머나먼 바닷길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목적지 항구에 도착하듯이, 그야말로 기도하고 바라는 그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기도하면 그대로 응답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소원의 항구로 늘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꼴찌 박사 이야기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미나무에는 아름다운 꽃도 있고 찌르는 가시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꽃나무에 이런 가시가 있담” 하면서 불평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가시나무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었군” 하면서 감탄합니다. 장미나무를 보면서 한 사람은 가시를, 한 사람은 꽃을 본 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나쁜 환경을 보고 고통하고 한탄하며, 반대의 사람은 좋은 것을 발견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아버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He's so good to me
나 감사 하겠네 너 감사 하겠네 우리 감사 하겠네-
나 감사 하겠네 너 감사 하겠네 우리 감사 하겠네
주 말씀하시길 죄사슬 끊겠네 우리 감사 하겠네 할렐루야
나 감사 하겠네 너 감사 하겠네 우리 감사 하겠네
4. 그렇다면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하나?
1)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감사를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인생의 밤을 만나고 풍랑을 만나서도 감사가 먼저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해도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통로이고 기적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라’라고 감사의 대상을 분명히 지적하여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이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 감사하기 위해 찬양단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미리미리 감사하는 신앙인들이 제대로 된 신앙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다 미리미리 감사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롬11:34,35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여 드리면 하나님이 뒤에 갚아 주십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습니까?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누가,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미리 감사하는 그가 축복입니다.
2)찬양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입술을 열어서 그 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한 자는 절대 침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으로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에 대한 시선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진부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하나님을 드러내놓고 자랑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들을 만민 중에 알리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1년 동안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가정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게 하심에 감사하도록 합시다.
3)물질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맺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