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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Feb 25 2018 01: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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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하며 삽시다.

본문 :

본문: 고후 1:15-20

평창올림픽이 오늘 폐막됩니다. 어제 저녁 우리나라는 이승훈선수가 금메달을 하나 추가해서 종합 7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낮에 한 컬링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종막의 경기가 결승에서 이겨서 온 나라가 영미 영미로 야단입니다. 신나는 올림픽이 그 동안 우리 국민들을 정말 신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가운데서 올림픽이 잘 마쳐져서 하나님이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생각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구 반대편 미국에는 지금 동성애로 온 나라가 시끌합니다. 정통교단인 미국 장로교회인 PCUSA 교단과 미국연합감리교인 UMC가 교단총회에서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제 미국이나 우리 한국도 이 동성애가 교회의 엄청난 잇슈로 등장하여 왔습니다. 이들 교회가 동성애 성도를 인정하여 받고 동성애 목회자를 인정하는 결의를 하자 미국 내의 여러 복음적인 교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고 교단에서 탈퇴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 뉴져지의 필그림교회의 양춘길 담임목사가 이를 반대하고 그 동안 수고하여 지은 교회당 130억 원짜리 교회당을 그대로 두고 소속하고 있었던 PCUSA 교단을 탈퇴하여 새롭게 시작하였는데 성도들 거의 100%가 담임목사님을 따라 나와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작년 년말에 소속 교단을 나오면서 2,200여 명의 성도 중에 5명의 성도가 떨어져 남았는데 나중에 2명이 다시 합류하여 결국 3명만 남고 다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은 동성애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신앙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1200만 달러, 13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포기하고 교단 탈퇴를 하고 나올 때는 교회당은 물론 교회 명칭, 은행 계좌까지 다 놓고 나와야 했는데도 성경에 따라 그대로 행하였더니 하나님의 도움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동성애는 어느 한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적 물결이자 무서운 영적 싸움이어서 전 세계의 교회가 다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교회나 성도 개개인은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로 사느냐가 숙제요 과제일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어떻게 이해하냐? 그리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 그리고 그 원리를 실제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고 인생의 삶의 방향과 그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가르침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우리는 사나 죽으나 성경을 신앙의 기본진리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하늘에 계시던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이 땅에 내려 오셨고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사건이 인류역사상 최대의 사건이요 최대의 신비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데리러 이 땅에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구속의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기독교 진리를 받고 아멘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길만이 유일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두가지 사건에 기독교 진리가 다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심이 예수그리스도인십니다. 하나님이 오실 땐 아들의 신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분이셨는데 완전히 아들 신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그 원칙을 요6: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전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밝히셨습니다.

누가 복된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입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그 자신들의 삶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하고 실천하려고 결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고 그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삶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예”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1. 예수는 오직 “예”만 하셨습니다.
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오직 “예”만 하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아예 아예 결심하셨습니다. 작정하고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성경 여러 곳에 그게 기록되어 나타납니다. 그게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잘 나타난 말씀이 요한복음 6장입니다.

6:38절,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이 땅에 33년을 사셨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오직 “예”만 있었던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아니요”란 말은 전혀 없으셨습니다. 티끌만큼도 없으셨습니다. 그 주님이 직접하신 말씀이 “인자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하신 말씀 그대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한 예수님의 실행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였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뜻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내려 놓고 아멘하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길이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없고 방법도 없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기만 하시면 오직 자기를 내리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수용하셨습니다. 그런 심플한 방법이었습니다. 내려 놓음, 이것이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그 실천의 현장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정말 자기 앞에 놓여진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신 기록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눅14:34). 고민하고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란 표현입니다. 그래서 36절,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절규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할 수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뜻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상충되면 그대로 내 뜻을 접고 내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만을 앞 세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뜻을 앞세우신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분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같지 않고 다르다고 판단되면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뜻을 그대로 접었습니다. 자신의 주장과 뜻이 아무리 강하였어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나서는 그대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셨고 그리고 그 뜻을 하나하나 따라가셨습니다. 삶으로 분명하게 실행하셨습니다. 생각으로만 아닙니다 말로만 아닙니다. 실제로 행동하셨고 그리고 실제로 인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든지 살든지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살아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입니다. 이게 주님의 오직 ‘예’만 하신 생활이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뜻, 즉 내 뜻을 내리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직 하나님만 높이셨습니다. 그 분은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아멘으로 살았던 분이십니다. 삶으로 아멘하셨습니다. 아멘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아멘은 삼가 자기를 부인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보면 그분은 정말 십자가 지는 게 싫었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는 자기의 뜻을 접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복된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였습니다. 아름다운 일생을 사신 분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냐 ‘아니냐’를 묻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들도 예수처럼 예하며 살려느냐 아니면 아니요 우리 뜻이 중요한데요 라고 살거냐 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이 무척 어렵습니다. 

18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우리에게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기를 바라는 권고의 말입니다. 즉, ‘예’하고 ‘아니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미쁘다란 믿을 수가 있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 있으시기에 그대로 아멘하고 예하라는 권고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예하고 살아서 손해 볼 것 같지? 그러나 아니야, 믿을 수 있는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손해 보지 않게 하셔, 믿어 그분이 아름답게 인도하실 것이니까 믿고 아멘해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아멘한다고 하여도 결코 손해나게 하시지 않으실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걸 알기에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예라고 하여, 아멘하여, 그런 말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합니다. 그러한 일상의 삶 중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동행하기를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함께 가기로 하셨고 동행하기를 요청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느냐는 질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아멘으로 예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라고 하고 아멘이라고 대답하고서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일생을 ‘예’라고 하여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셔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불려 올라간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에녹이고, 그 다음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창5장에 21-24절에 보면 하나님이 에녹과 함께 300년 동안 동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동행하였다”는 말은 에녹이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예’라고 대답하고는 하나님과 팔짱을 끼고 계속하여 그분과 대화하며 더욱 가까워지며, 오고 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에녹은 죄악이 가득하고, 사악한 사회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와 동행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에녹은 광야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수많은 문제꺼리와 부담을 지고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아내와 자식이 있었고, 의무와 책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거룩하기 위해 산속이나 동굴 속에 숨어있지 않았습니다. 죄악된 세상 속에 살았지만 세상과 구별되게 살았고, 그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아무 연약함이 없이, 실패함이 없이 아무런 넘어짐이 없이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여전히 넘어지고 실패하는 연약한 존재였지만 항상 하나님을 찾아 다시 힘을 얻으며,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질제로 세상 살면서 우리가 늘 ‘예’라고 대답하기란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그런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절). 그분은 우리를 잘 아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예라고 대답하도록 도우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나가고 기도하면 우리를 도와주시는 살아계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누려야 할 최고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예’하고 ‘아멘’하는 것입니다. ‘아멘’과 ‘예’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육을 가진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아멘하고 동행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며, 항상 기뻐하며,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하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언3:5-6절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으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나의 인생의 여정을 지도해 주실 뿐만 아니라 친밀하게 나와 함께 하시며, 범사에 함께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속에서, 직장속에서, 사업속에서 실제적으로 낱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동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하나님이 그 사람과 인격적인 교제하며 그 사람의 생활을 통치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지도해 주실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께 예라고 대답하고 아멘으로 대답하기로 결단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아멘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런다면 그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아멘하려느냐 아니면 노멘하려느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경우에도 아멘으로 대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로도 아멘하고, 행동으로도 아멘하고, 삶으로도 아멘하시기 축복합니다. 아멘의 성도 그가 복된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정말 믿음직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하도록 합시다. 지금은 어려울지 몰락도 마침내 우리 하나님, 믿음직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천지는 없어도 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주님, 주님만 가십시오’라고 주님만 앞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동행하고 함께 하기를 소망하십니다. 주님의 소원은 ‘우리 함께 가자’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뭐라고 행동하십니까? ‘예’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앞 서 가세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예’라고 대답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고 ‘아니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예”라고 한 자의 생활
1)육체를 따라 예하지 않습니다.
17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하나님 앞에서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대답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육체를 따라 대답한다는 말은 그 생각이나 삶이 세상적이란 말입니다. 불신앙적이란 의미입니다. 변덕스럽고 자가당착적인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불성실한 목적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라고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의 그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의 뜻이지 결코 이렇게 육신을 따라서 대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예’하며 ‘아멘’으로 답하며 사는 그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서 판단하고 대답하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즉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엇이 기준입니까? 믿음이 기준이요 신앙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결코 내 환경이나 내 감정이나 내 판단이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분, 그분의 말씀, 그분의 평가, 그게 기준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예’하는 사람들의 삶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아멘한다는 것은 같은 마음, 같은 생각, 같은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신대로 믿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하고 살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14:21절에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기준이요, 나의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실 때 그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냐”라고 대답하십니다. 우리가 “예”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 그래 알았어”라고 대답하여 말씀하십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혼을 합의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혼기간 서로 사랑했고, 보람도, 행복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녀 11명 있었습니다. 서로 자녀를 더 많이 데리고 살고 싶어 했습니다. 부부간에는 전혀 양보가 없었습니다. 공평하게 하자며 11명을 절반씩 나누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한 명이 남았습니다. 한 명을 놓고 옥신각신 했지만 결론이 나 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또 다시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랍비가 명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를 더 낳으라. 그런 다음에 각각 6명의 아이를 나눠 가져라” 부부는 랍비의 말을 따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부부 사이에 부인은 임신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쌍둥이를 낳은 것입니다. 자녀수가 도로 홀수가 된 것입니다. 부부는 먼저 새 생명을 둘이나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끝까지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로구나!” 그리고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이는 대로 평가하며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깊이 있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생활도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느 것을 원하시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저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원리를 우리에게 제시하셨는지 그걸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원리와 기준에서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삽니다.
20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께 ‘예’하고 ‘아멘’하는 사람들은 그 ‘예’와 아멘으로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와 아멘이 그렇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주께 영광, 우리 하나님께 영광,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요 궁극적인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런 나날의 생활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십니다.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께 맞추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동행입니다. 천국의 하나님께 표준하여 그 분께 맞추어 가면, 때가 되면 천국에 들어갑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에 나는 제거되고, 깨어져 나가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인격, 그분의 뜻이 내 것이 되고 나는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에 아멘하며 살아 가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안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맺음 :
구약시대에는 양같은 짐승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들이 양을 몰고 와서 성전 뜰에서 그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립니다. 양은 비교적 잘 죽었지만 소 같은 짐승들을 잘 죽지를 않습니다. 그들을 잡으려면 이게 보통의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죽이려 하고 안 죽으려 하고, 여기서 문제가 일어나고 피가 범벅이 되고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죽은 제물이 되셨습니다. 단번에 결심하고 따르는 사람들, 그들이 온전한 제물의 필수요건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예’로 이끌려져 왔습니다.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발라라, ‘예’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내 밀어아라, ‘예’ 여리고 성을 하라 한바퀴, 제 칠일에는 일곱바퀴를 돌아라 ‘예’ 십자가를 져라 ‘예’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쓰여졌고 역사는 하나님 앞에서 ‘아멘’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끌려져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쓰여가고 이끌려져 갈 것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자들입니까? 그 중심에 아예 하나님 앞에서 ‘예’하고 ‘아멘’하며 예수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라고 오직 예수만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님께 ‘예’라고만 대답하며 묵묵히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과 저는 오직 ‘예’만 하면서 ‘아멘’하면서 주님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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