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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Feb 04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인간의 정체성

본문 :

본문: 요 3:25-36

금주 금요일에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회가 잘 진행이 되고 성공적 대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대회기간에 우리 나라를 찾는 해외의 선수단이 한국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조금이라도 받고 가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의 대회가 열리고 통일을 향한 유익한 전진의 기회가 되기 바라며 우리나라의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는 올림픽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확히 정립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자기 자신을 바르게 세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뭐냐?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세우고 정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 나 자신과의 나를 바르게 정립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바르게 세우지 못하면 나를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의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일, 즉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기만 한다면 그는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시도바울은 우리에게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엡5:15-17).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잘 세우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있는 자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사람을 평가하신 적이 가끔 있었습니다. 그 평가 중에 특별히 칭찬하신 때가 있었는데 그게 눅7:2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정말 최고의 평가입니다. 우리 주님은 세례요한을 최고로 높여서 칭찬하셨습니다. 무엇이 세례요한을 주님 앞에서 그토록 엄청난 평가를 받게 하셨을까 그게 궁금합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어머어마한 평가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어떤 점을 우리 주님이 보신 것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그런 평가와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게 궁금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자세히 보면 그는 정말 하나님의 분명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서 일한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야말로 자기가 이 땅에서 언제 무엇을 하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하는 자기의 할 일을 알았고 자기가 서야할 그 자리를 제대로 알았던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알고 그 바탕에서 인생을 멋지게 살다가 간 사람이었습니다.

돌아보세요, 하나님 앞에서의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 일도 어떤 신앙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우리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며 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입니까? 우리는 그걸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고백하여야 하고 그리고 그 바탕에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게 인간됨의 정체성입니다. 세례요한은 그게 분명하였던 많지 않은 인물입니다.

1.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은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이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서 정체성이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학사전에 따르면 ‘정체성이란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규정합니다. 영어로는 ①identity  ②sexuality를 말합니다. 이 identity이란 한 사물의 본디의 형체가 갖고 있는 그 성격을 지칭하여 하는 말합니다.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입니다. 그러므로 정체성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성질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며 어떻게 존재하여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았고 말하며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받으러 유대광야로 몰려 왔습니다. 마치 구름처럼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메시야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아니라 메시야를 소개하는 존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나는 단지 메시야를 소개하는 소개자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여서 자기의 신분을 말하였습니다.

28절,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세례요한은 당시의 유다에는 에세네파가 있었고 그는 이 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에세네파는 광야에 살면서 세속과 떨어져서 집단으로 생활하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금욕생활을 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례요한도 그렇게 경건하게 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구세주에 대하여 설명하고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라고 전파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수도 없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례요한이 마치 구세주로 오신 분인 줄로 알고 숭배하고 따랐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이 군중들에게 한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를 증언해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았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지 간에 나는 내가 할 일을 알고 내 위치를 아는 일, 이것이 자기 정체성입니다. 자기의 존재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아는 일,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하고 그 나라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 여기가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길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입니다. 그 정체성 위에 서 있어야 곁길로 가지 아니하고 제대로 된 자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이고 저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선 나,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이 나를 보내셔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그리고 구원받았고 확실하게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지옥과 저주를 벗어 버렸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영원히 살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와서 그 중에는 그를 메시야라고 믿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요동하지 아니하고 내 뒤에 오실 그 메시야를 소개하고 자신은 단순히 그 소개자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남이 뭐래도,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를 바로 알고 우쭐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세상에서 조금 더 이뤘다고, 남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조금 더 가졌다고, 조금 더 안다고 으시대고 우쭐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전혀 요동하지 아니하고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자기를 소개하였습니다.

다 가졌어도 우쭐대지 않는 사람, 많이 배웠어도 고개들지 않는 사람, 훨씬 더 알면서도 큰 소리 치지 않는 사람,  가진 것은 많지만 이를 내세우지 않고 약자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이 속이 찬 사람들입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인물입니다. ‘나는 단지 광야의 소리야’ 이게 요한의 자기 고백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이런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전투를 보면 저절로 신이 납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 장군을 향해서 평상복 차림으로 전투하러 나가자 골리앗 장군이 다윗에게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라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자세히 보면 골리앗은 사람이 개처럼 될 수도 있다고 믿은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양을 치는 어린 목동이었지만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았던 인물입니다. 소년이지만 왕의 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다윗이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물맷돌로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차 왕될 왕의 의식을 가지고 나간 다윗입니다.

사도행전 5장의 시몬은 사마리아 성에서 마술사로 이름이 난 돈많은 사람으로 빌립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 돈을 가지고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돈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사려고 시도합니다. 베드로는 네가 돈과 함께 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강하게 그런 시몬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몬이즘이 나온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시도 그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자기 성찰입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이 도가 지나쳐서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것은 일종의 병적 심리입니다. 이것을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산다면 기뻐할 때도 있지만 울 때도 있고, 섭섭할 때도 많을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우리를 칭찬해 주지만, 우리를 비난하고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왕의 자녀이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28절,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 보내주신 인물입니다. 당당해야 합니다. 그런 의식이 정확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쫄지 마세요. 자신을 자아라는 감옥에 가두어 두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 얼마나 진실히 살고 얼마나 섬기며 사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골리앗에게 누가 개라고 합니까? 맞아 죽습니다. 그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했기에 그런 말이 튀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자신이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구원받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자의식을 그냥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도 자신을 개라고 말하는 골리앗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우울증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무슨 일에 꼭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하나님이 보내서 여기 있는 사람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2. 자기 사명을 정확히 아는 사람
세례요한은 자기가 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고백한 인물입니다.

23절,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자기가 할 일이 메시야에 대하여 소개하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로 알았습니다. 광야에 몰려 오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메시야를 소개하는 일, 그리고 그를 외치는 일, 이게 세례요한, 그가 평생에 할 일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결코 그리스도도 아니요 메시야도 아니며 단지 그분을 소개하고 알리는 광야의 소리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할 일을 알았고 그 일을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의 일을 알고 그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 멋진 사람이요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사람들이 자기가 할 일을 알고 그 일 위에 서기를 소망하십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에게 가서 할 일을 맡기셨습니다. 출3: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고 정확하게 할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출5:1절,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우여곡절 끝에 모세는 그 일을 감당합니다. 그 후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주시는 그 일, 자기가 감당하여야 할 그 일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리고 일생을 다하여 그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면서 감당하였습니다. 광야에서도 감당하였습니다. 40년 간이나 꾸준히 쉬지 아니하면서 감당하였습니다. 때로는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면서도 감당하였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위험과 난관 속에서도 그 사명 위에서 살았습니다. 수없는 난관과 문제 속에서도 굽히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일을 아주 성실하게 감당합니다.

구약의 모세가 그랬다면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얼마나 고생하며 주신 사명을 감당하였는지 바울의 고백을 보면 그냥 못 읽고 읽는 사람들마다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고후11:23-27절,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진 그 일을 분명히 잘 알고 감당하는 사람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일생 앞에서 자기가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그 사명 위에서 삶을 살고 행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눈빛이 정확하고 걸음걸이가 분명합니다. 생각이 확실하고 말이 살아 있습니다.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세처럼,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라고 기대하시는 것 같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게 정확하여야 합니다. 그게 소명과 사명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사명과 소명이 분명해야 그 인생길에서 갈짓자 걸음을 걷지 않습니다. 곧은 길로 가고 정확한 길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평생을 두고 할 일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시간에 할 일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걸 알고 그걸 행해야 합니다. 지금 할 일도 그냥 피하기만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그 일, 그걸 알고 행하여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해도 안됩니다. 내가 싫다고 해서 그대로 피하기만 해서도 안됩니다. 할 일을 알고 실행하고 가야 합니다. 남들은 다 아는데, 저 사람이 저 자리에서 저걸 해야 해, 그런데 정작 본인만 모르고 피하고 가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힘들어도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아정체성을 잘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그걸 먼저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교회 목자들과 교사들, 성가대원들과 전도부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자기들이 할 일을 잘 알고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건 내가 할 일이야, 힘들지만 그래도 할 일이야, 그렇게 알고 열심히 일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할 일을 알고 그 사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3. 끝까지 겸손한 사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나면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그게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남은 과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들도 아닙니다. 정말 때로는 바람이 불면 훅 하면 날아가 버릴 그런 하잘 것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자세는 그 어떤 것보다 겸손한 자세입니다. 세례요한은 정말 그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보면 지나치게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게 지나치면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기 쉽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이와 전혀 다른 겸손함입니다.

28,29절,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세례요한은 자기를 신랑 앞에서 소개하는 들러리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는 자기 인식입니다. 그만큼 주님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의 겸손의 결정체입니다. 예수를 높이고 예수를 자랑하는 일에 열중하고 예수로 만족하는 사람, 멋진 세례요한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입니다.

30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사람은 마지막까지, 최후까지, 정말 그 인생의 끝까지 겸손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은 마지막까지 겸손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렇게 겸손하게 살다가 간 멋진 사람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높이는 사람, 주님의 흥함을 위하여 자기를 온전히 드린 사람,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자기를 온전히 제물로 올려 드린 사람, 일생을 두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로 살아 간 사람, 이게 세례요한의 일생입니다.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자아 정체성을 명확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진정한 용기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영국 런던에 가면 트리팔가 광장이 있습니다. 이 광장은 1851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제독이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에게 승리했던 것을 기념하는 기념광장입니다. 광장에 들어서면 제일 높은 곳에 이 넬슨제독의 51M의 동상이 장엄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넬슨제독이 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을 막을 수 있었고 110년 동안 영국이 대서양을 장악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넬슨은 프랑스 측 총탄을 맞은 후 4시간이나 지휘를 계속하고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하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나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라고.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이 넬슨제독의 이런 승리는 그가 다닌 이튼스쿨에서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는 영국 잉글랜드 버크셔 주 이튼에 위치한 사립 중학교 및 고등학교입니다. 1440년에 잉글랜드의 헨리 6세가 세웠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규모가 점차 확대되었고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사립 중등학교로서 20여 명의 총리를 비롯한 많은 영국 정치, 문화계의 명사를 배출했습니다. 12~18세 사이의 소년 약 1,200명이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며 다양한 교과를 가르치며, 학생 개개인한테 지도 교수를 배정해서 수업 시간 이외에도 학습을 지도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전설처럼 내려오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마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약자를 깔보지 마라, 잘난 체하지 마라, 다만,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입니다. 마지막이 용기 있게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 용기로 넬슨은 프랑스와 전투에서 승리하고 영국을 지켜 낼 수가 있었습니다.

다윗 역시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 용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입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단련했던 물매가 있었고 그 물맷돌로 골리앗 장군을 쓰러트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평상시 읽는 그 성경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확신을 주고 천국을 보여 줄 것입니다. 외롭게 드리던 그 새벽기도가 어두움과 혼란이 온 세상을 감쌀 때 나에게 빛을 줄 것이며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어려움 중에서 드렸던 그 헌금이나, 했던 그 헌신이 여러분의 물매돌이 될 것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들의 영적 물맷돌이 된다는 사실, 그것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맺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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